“구강검진으로 치과계 새 역사 쓴다”
“구강검진으로 치과계 새 역사 쓴다”
  • 박정철 자문위원
  • 승인 2011.01.31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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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 통한 전신질환 진단에 대해

▲ 박정철 자문위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김 부장은 혈압을 측정한다. 140/90 mm Hg. 약을 먹고는 있지만 아직은 높은 편이다. 아무래도 의사의 지시대로 체중을 감량해야 할 것 같다. 술 담배로 온 몸을 혹사한 탓에 남보다 일찍 당뇨도 찾아왔다. 손가락 천자로 당 수치 검사를 하니 공복 혈당 120mg/dL이 나온다. 다행히도 잘 조절되고 있다.

조깅복으로 갈아입은 뒤 조깅을 나선다. 워낙 운동이라곤 관심이 없었지만 운동화 바닥에 있는 센서가 스마트폰을 통해 김 부장이 달린 거리와 속도를 측정한 뒤 트위터 (twitter)에 올리게 돼 있어 고향 친구와 선의의 경쟁도 하며 그 재미에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조깅을 하고 있다.

3.2km의 조깅을 마친 뒤 소모된 열량은 250Kcal이다. 소모된 칼로리의 양이 만족스러운 덕에 오늘은 특별히 물 대신 비타민 A 210ug, 비타민 C 7.5mg, 비타민 E 1.6mg이 함유된 30Kcal 비타민 음료를 마신다. 상큼한 음료가 목으로 넘어가며 열이 나던 속을 식혀주자 ‘정말 멋진 인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몸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 흐뭇한 요즘이다.

무작정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던 것이 건강관리의 전부이던 시대는 끝나고 정확한 수치와 정량화로 자신의 몸에 대해 올바로 아는 것이 대세인 시대가 되었다. 기술의 발달로 자신의 몸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고, 사람들의 관심도 더욱 커졌다.

물론 자신의 몸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심의 끝은 자신의 유전정보가 담긴 DNA 염기서열을 직접 확인하는 일이겠지만 이것은 일반인이 결코 꿈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미국의 거대 검색기업인 구글사의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의 부인은 23andMe 사의 공동 경영자로 근무하고 있다. 이 회사가 하는 일은 고객에게 검진키트를 보내주고 고객이 뱉은 타액 속에서 DNA를 검출한 뒤 무려 100여 가지의 질병 발병률과 자신의 족보, 심지어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나, 흡연할 경우 금연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 알려주고, 매달 새로운 질병 연관 유전자 정보를 업데이트해 주는 일이다.

사실 이런 서비스는 기존의 채혈 방식으로 이미 가능한 것이었으나 검사의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타액 내에서 검출되는 세포의 DNA만으로도 충분히 분석이 가능하게 되어, 일반인도 통증 없이 손쉽게 자신의 검체물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타액 내에서 검출할 수 있는 단백질은 80여 가지에 불과했고 이를 통해 신체의 상태를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전무했다. 하지만 현재는 거의 1000여 가지에 이르는 단백질과 유전체를 감별해 낼 수 있게 되었고 타액은 물론 구강 점막액, 그리고 치은 열구액(gingival crevicular fluid)을 통해서도 혈액에 버금가는 충분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예방이 최선의 치료’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기존의 채혈검사나 조직 생검보다 더 손쉽고 비침습적이라는 점에서 구강을 통한 전신질환의 진단 및 예방은 향후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과 상업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신체검사가 치과 체어 위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구강을 통한 전신질환의 진단기법이 가진 가능성은 상업적·학문적 측면 모두에서 무궁무진하건만 불행히도 아직 국내에는 도입될 기미가 없다. 먼저 시작하는 자가 선점할 수 있는 무주공산이라 하겠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음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이어폰 내의 센서가 혈압, 산소포화도, 맥박을 측정해 자신의 스마트폰에 기록해 주는 기술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귀 안에 있는 모세혈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이 정도라면 구강 내 존재하는 타액이나 점막, 치은열구액을 통한 검진기술이 얼마나 더 발전할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구강을 통한 전신상태의 진단 기술은 신학문의 영역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연구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진단 술식이 구강을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향후 많은 치과의사 및 연구자들이 주도적으로 이 신생학문 분야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이에 수반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대처다. 가타카(GATACA)라는 헐리웃 영화에서 그려졌듯 개인의 노력이나 환경을 배제하고 유전적 정보를 통해서만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만일 건강 보험을 들려고 했더니 상담원이 상담자의 구강점막을 면봉으로 훑고, 수 분 뒤에 나온 결과를 본 뒤 "당신은 구강암에 걸릴 확률 87%이므로 보험료 최고 등급을 내셔야 합니다"라고 한다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미국은 이미 70년대부터 환자의 유전정보를 이용하는 이런 행위는 엄밀한 의미에서 ‘차별 행위’이므로 이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어 두었다.

우리도 이를 선례 삼아 철저한 준비를 통해 ‘구강을 통한 전신 질환의 진단 및 예방’이라는 새로운 학문·임상 분야를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박정철 연세대학교 치과대학병원 치주과 연구강사> -실시간 치과전문지 덴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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