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화려한 업적 뒤로하고 이젠 나눔으로
40년 화려한 업적 뒤로하고 이젠 나눔으로
  • 구명희 기자
  • 승인 2014.06.19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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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구강악안면외과 권종진 교수

 

▲ 권종진 교수

“지난주에 울릉도 성인봉에 다녀왔다. 높이가 1000m쯤 된다. 41년 만이다. 치과대학 졸업 6개월을 남겨두고 간 적이 있다. 그후 나는 치과의사가 됐고, 지금 이렇게 정년을 맞았다.”

41년 전 기대와 두려움을 갖고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권종진 교수(고려대 안암병원)는 40년 동안 화려한 업적을 남기며 오는 8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

“처음 울릉도에 갔을 때는 지방자치가 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보다 길이 잘 닦여있지 않았는데, 다시 찾으니 훨씬 편해졌더라. 그걸 보고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게 실감났다. 변화는 사회랑 연관돼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40년 동안 많이 변화된 것을 느낀다. 그 당시에는 새마을운동을 하며 먹고 살기에 급급했다. 지금 치과를 봐도 교과서 내용만 달라진 것이 아닌 시스템 자체가 변하지 않았는가.”

그가 학생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많이 발전한 것이다. 그때는 일본,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 가서 학문을 배우고 오는 경우가 잦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지식을 배우러 오고, 우리의 의술을 인정하는 상황이다. 그만큼 한국이 성장했고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 권종진 교수가 자신의 임상 케이스를 설명하고 있다.

1985년 고려대학교 치과병원으로 온 그는 중국의 4개 대학의 명예원장, 교수를 지내고 있다. 1996년 중국에서 임플란트와 관련한 주제로 도시 순회강연을 했고, 중국 CCTV에 나왔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인기비결은 다름아닌, 어려운 케이스를 정리해서 발표했기 때문이 아닐까.

권 교수는 턱관절, 임플란트 등 80년대에는 쉽게 시도하기 어려웠던 수술 케이스를 소개했다. 구강암으로 인해 반쪽 얼굴로만 살 뻔했던 환자에게 갈비뼈를 심어 성공한 사례 등 30년이 지난 지금도 박수를 받을 만한 케이스를 선보였던 것이다.

“임플란트가 정말 좋다고 느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삶을 보면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함께 턱관절 재건수술도 했는데, 이런 상황을 볼 때마다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권종진 교수는 40년 동안 치과의사로서의 삶, 자신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바탕으로 특강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22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대강당에서 진행되는 ‘2014 춘계학술대회 및 권종진 교수 정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연자로 나선다. 초대 턱관절협회 이사장으로 몸담았던 그를 위해 후배들이 마련한 자리다.

‘치과치료와 연관된 턱관절 장애 및 난치성 턱관절 질환의 예방 및 극복’이란 주제로 다양한 증례를 통해 임상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점과 향후 대처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교합압이 턱관절과 임플란트에 미치는 영향 ▲구강암, 종양 재건술 후 임플란트를 이용한 구강기능회복 증례 ▲재건술 후 장기 관찰 결과 ▲재건술 후 변형에 의한 반족재건수술증례 ▲타액선 질환, 턱관절 질환, 치아결손의 상호관계 ▲임플란트를 이용한 고정성보철물의 턱관절 관련 고려사항 ▲합병증, 후유증으로 치아결혼, 교합압, 구강재건술, 임플란트와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턱관절 질환 환자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며 다양한 치료와 예방, 해결방법이 보고되고 있다. 임플란트 또한 마찬가지다. 다음달부터는 의료보험에 포함된다. 하지만 대부분 연구에서 치아의 유무와 턱관절 질환과의 관계, 임플란트와 관련해 단기 또는 장기적인 연구결과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임플란트, 턱관절을 같이 제공하려 한다. 현재 임플란트는 보편화됐는데 사고와 소송이 많다. 특히 교합 조절을 실패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턱관절과 교합은 언제나 강조하는데 커다란 변화가 오면 임플란트는 실패한다. 단기간에 보고된 것은 꽤 있는데 30년 동안 관찰한 케이스는 드물다. 내가 그동안 진료했던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임플란트 시술은 환자가 잘못해서 사고가 나지 않는다. 치과의사의 책임이 크므로 합병증과 후유증 예방도 우리가 해야 된다”고 권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최근 빛을 발하고 있는 임플란트 주위염을 지난 2001년 미리 경험했다. 상대적으로 빨리 시도한 셈이다. 미국에서 특허 받았을 정도다. “남들이 무슨 말인지 모를 때 특허를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좋은 아이디어로 통한다. 그땐 케이스가 적어 경험을 많이 못해본 점이 아쉽기도 하다.”

다시 생각해도 환자가 새 생명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 일이 뿌듯하다는 권 교수는 “2,30대 환자가 많았는데 30년이 지났으니 그들이 환갑이다. 얼굴의 반이 없었다면 틀니도 끼지 못하는 나이다. 기능이 우선시돼야 하는데 그걸 못하면 안 되지 않냐”며 “요즘은 임플란트를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별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칙을 지키면서 진행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잘 된 케이스는 보람을 느낀 반면, 그에게도 40년 동안 치과의사로서의 삶에 아쉬움이 남는 듯했다. 그는 “왜 공부를 더 하지 않았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아쉽기도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전국의 제자들과 함께 공군 조종사 순직자 유가족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작년에 계룡대에서 정식으로 계약했다. 치과치료뿐 아니라 때론 할아버지같이, 아버지처럼 멘토 역할도 겸하는 중이다. 퇴임하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 좀더 활발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권종진 교수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열심히 해야 한다. 임플란트를 하면서 환자를 너무 돈으로 보면 안 된다. 생각은 쉬워보여도 절대 쉽지 않다. 미래, 국가, 국민을 위해 의사는 무조건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당부했다.

-실시간 치과전문지 덴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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