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가져다준 환자와의 소통시간
메르스가 가져다준 환자와의 소통시간
  • 명훈 교수
  • 승인 2015.06.2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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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훈 교수(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가 환자와 상담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오른쪽 뺨이 빨갛게 부어서 본원(서울대학교치과병원)을 찾은 13살 수민이(가명)는 아래턱에 발생한 ‘유년성 만성 골수염’이라는 희귀한 병을 진단받았다. 이미 뺨으로 고름이 터져 나오고 통증이 악화되어 급히 수술이 필요했지만, 늘 많은 환자로 수술이 밀려있는 대학병원의 사정상 대기를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수민이에게 뜻하지 않게 반가운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적어도 2개월은 기다려야 했던 수술이 3일로 앞당겨진 것이다. 수민이의 부모는 수술을 마치고 나서야 메르스로 인해 예정된 수술들이 연기되면서 수민이 수술이 예방보다 훨씬 앞당겨지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메르스로 인해 양악수술이나 임플란트 같은 수술이 많이 연기되면서 대기 중이던 구강암 환자나 수민이 같은 중증치과질환 환자의 대기적체가 많이 해소된 것이다.

전국을 뒤덮은 메르스 공포로 인해 사람들이 병원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 하다 보니, 메르스는 둘째 치고 가능한 한 빨리 수술을 해야만 하는 중증질환자들에게 혜택이 주어지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요즘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구강종양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외래에 새로 내원하는 환자가 감소하면서 대기시간이 줄고 환자와 대화할 시간도 많아졌다. 필자의 경우 기존에 평균 외래환자 대기시간은 30분, 면담시간은 기껏해야 1분내지 2분이었지만 신환이 적어지면서 대기시간은 5분으로 줄고 환자와의 면담시간도 3분 이상으로 늘어났다.

어찌보면 이게 정상적인 진료일 것이다. 늘 쫓기듯 진료하던 모습에 익숙하던 환자들이 “더 궁금한 점 없으십니까?”라고 물으면, “제게 이렇게 오래 계셔도 되나요, 교수님?”하고 반문할 때는 ‘그동안 얼마나 내가 같이 있어드리지 못했기에 이리 좋아하시는가?’ 생각하며 미소를 짓게 된다.

‘메르스가 종식되고 나서 환자들이 다시 밀려들기 시작하면 다시 이렇게 환자와 오래 얘기할 수 없겠지?’라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기도 한다.

메르스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웃음을 빼앗아가고 있는 와중에 의사로서 새삼 많은 점을 느끼게 된다. 메르스는 아직 백신이 없지만, 대한민국 전체가 사회적 백신을 맞고 아파서 끙끙 앓고 있는 것만 같다.

메르스로 인해 노출된 방역체계의 허술함만이 아니라 시민의식과, 대학병원에만 집중된 환자 쏠림, 그로 인한 의료서비스 질의 저하 등에 우리 사회가 백신을 진하게 맞고 나면 더 건강한 사회로 거듭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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