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병원과 환자에게 무엇을 남겼나
광고는 병원과 환자에게 무엇을 남겼나
  • 이우진 기자
  • 승인 2015.12.17 0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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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들의 홍보전쟁시대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의료광고의 홍수 속에 하루를 보낸다. 병원광고는 우리가 ‘광고’라고 인식하는 것을 넘어선다. 때로는 ‘명의’라는 이름으로, 혹은 ‘상’이라는 이름으로 ‘고객’을 유혹한다. 의료기관들의 ‘진짜’ 홍보와 속이야기를 들어보고,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한 대안을 찾아본다.

<上> 돈뿌리면 광고에 기사는 ‘덤’ … 홍보도 ‘1+1’(?)
<下> 광고는 환자에게 무엇을 남겼나

# ‘현란했던’ 병원의 빛과 그림자 = 2008년 안산에서 두 명의 대표원장이 함께 개원한 T병원은 최신 기술을 이용한 척추·관절 치료를 모토로 내세웠다.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개원 2년 만에 척추·관절수술 시행 6000건을 돌파할 만큼 병원의 성장세는 가팔랐다. 규모가 커지자 2명의 대표원장은 16개의 네트워크 병원을 만들고 각각 7개, 9개병원을 분리경영했다.

이 병원이 세를 불리기 위해 집중한 것은 공격적인 홍보전략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유명인을 홍보대사로 내세우기였다. 병원은 인기 스포츠 스타를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병원 인근 지하철역, 병원 인근을 지나는 버스와 마을버스, 인터넷을 이용한 바이럴(입소문) 마케팅 등에 활용했다.

‘광고 아닌 광고’로 불리는 협찬기사와 ‘명의’ 만들기, 수상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기획특집이라는 이름 아래 일간지 여러 곳과 보건의료 전문지, 심지어는 스포츠·연예지에까지 유가기사(광고료를 받아 작성하는 기사)를 소위 ‘깔았다’. 병원 앞에는 ‘신흥강호’ 혹은 ‘새지평’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 T병원을 다룬 기사와 T병원 홍보대사가 나온 광고들.

산하 16개 병원장들은 2014년 1인1개소 위반 및 의약품 리베이트 혐의로 네트워크가 와해되기 전까지 크건작건 연간 3~4개의 상을 받았다. 메이저병원에서 근무하던 ‘명의’들을 스카웃하고 이들을 다시 신문과 방송에 내보내기도 했다.

병원계에서는 ‘T병원이 매일 홍보에 1억을 쓴다더라’ 하는 식의 소문이 돌 정도로 물량전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중소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은 광고 및 판공비에 사용하는 비용으로 한해 의료이익의 30~40% 선을 사용하는데 비해 T병원은 이보다 많은 비용을 사용했다는 것이 인근 병원 관계자들의 말이다.

수원의 한 병원 원무과장은 “T병원이 그렇게 환자를 끌어들이려면 그 정도의 돈은 (지불)해야 했을 것”이라며 “정상적인 홍보으로 환자가 몰려오기는 어렵다. T병원이 있었을 때만 해도 병원 인근을 돌아다니는 병원과 택시 중 상당수는 T병원의 이름을 달고 다니더라. 그정도로 광고를 깔아놓으려면 어느 정도 돈이 들었겠느냐”고 말했다.

문제는 홍보비용이 늘어나면서 병원의 각 지점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필요 이상의 수술 권유와 무리한 수술을 시도하면서 생겼다. 자연히 부작용을 호소하며 소송을 제기하려는 환자들이 늘어났다. T병원 지점이 있는 병원 관계자들은 지역 내 재수술 환자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같은 분위기는 2014년 병원이 사무장병원 혐의로 법정에서 패소하자 더욱 심각해졌다.

지금은 폐원한 T네트워크 병원이 있었던 서울 강동지역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T병원이 폐원하고 2~3년이 지나 면서부터 척추 수술 후 통증이 재발하거나 다른 부위에 문제가 발생, 재수술을 원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환자가 늘어나면 좋을 듯하지만, 이 대학병원 관계자는 오히려 불만을 털어 놓았다. 진료기록을 찾아보려해도 병원이 없어져 수술 당시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첫 수술에 비해 치료율이 낮고 성공률도 떨어지는 부담을 져야 했다는 것이다.

인근에 위치한 다른 대학병원 정형외과 K교수도 “수술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어 재수술이 매우 힘든 환자도 많이 찾아온다”며 “척추 수술은 환자의 남은 일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몇몇 환자들을 보면 척추를 완전히 ‘헤집어’ 놓는 바람에 막상 오픈(절개)을 해놓고 난감한 경우도 있다”고 털어놓았다.(관련 기사 : 대학병원 척추·관절 재수술 환자 증가세).

2500여명이 가입한 의료소송 지원카페는 해당 병원과 관련해 상담을 받았던 게시글이 전체 4만2000여건 중 약 20%인 약 8000건에 달했다.

이 네트워크 병원은 결국 2014년 1인1개소법 위반으로 사실상 와해됐지만 환자에게는 피해를, 인근 의료기관들에게는 부담감만을 남기고 떠난 셈이다.

# ‘과다홍보→경영악화→수익추구’ 이어지는 악순환 … 해답은 없나 = T병원은 그렇게 무너졌지만, 여전히 수많은 병·의원들은 무리해서 홍보전을 벌이고 있다.

▲ 지하철 역사에 게시된 의료기관의 광고들. 특히 서울 강남 일부 지역은 미용성형 관련 광고들이 지나치게 많아 ‘공해’ 수준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의료기관들의 홍보전이 이처럼 치열한 이유는 타 분야와 달리 자신의 병·의원을 차별화하기 어렵고, 광고를 본 후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적어 ‘물량전’이라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T병원의 사례와 같이 과다한 홍보는 수익 악화를 부르고 수익 악화가 다시 과잉진료와 필요 이상의 비급여 시술 유도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같은 사태를 국가에서 다시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광고가 성행하게 된 것은 2005년 헌법재판소가 ‘의료기관의 광고금지가 표현 및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부터였기 때문이다.

2007년 의료법 개정 이후 보건복지부가 대한의사협회(한의 의료기관은 대한한의사협회)에 의료기관사전심의를 넘겨주면서 현재의 ‘네거티브 심의(위반 조항 위주의 심의)’와 광고체계가 자리를 잡았다.

당시에는 “홍보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며 상당수 의료기관들은 법 개정을 반겼지만, 광고를 넘어선 변종 광고와 편법 마케팅이 성행하자 반대로 정부가 광고를 규제할 수 있는 새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의료계에서 나오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공동위원장은 “현재 의료광고가 사실상 무제한으로 가능하다보니 그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의협이 가진) 의료광고심의제도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새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 위원장은 “광고를 규제하면 풍선효과로 편법성 홍보가 증가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광고가 줄어들면 (편법성 홍보도) 줄어들 것”이라며 “병원 홍보가 줄어들면 광고에 따른 효과가 늘어날 것이고 억지로 편법성 광고는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광고체계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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