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는 현지 떠나도 조언 계속해줘야”
“선교사는 현지 떠나도 조언 계속해줘야”
  • 김정교 기자
  • 승인 2016.10.12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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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해외 치과의료 봉사한 강지헌 아프리카 말라위 선교사
강지헌 선교사

치과의사로서 충북 청주에서 4년 동안 개원하다가 한국예수전도단에서 선교 훈련을 받고 95년부터 20여 년 동안 선교에 헌신해 온 강지헌 선교사. 아내와 아이 셋과 함께 구소련 우크라이나부터 시작해 지금은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치과 의료를 통해 기독교 복음을 전하고 있다.

지난 4일 열린 기독의료선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말라위 릴롱궤 공항에서 인천공항까지 24시간을 날아온 강 선교사로부터 해외 봉사의 기쁨과 어려움, 앞으로의 계획을 듣는다.

- 치과의료 선교사,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라기보다 기독교적 표현으로 하자면 ‘하나님이 이끄셔서’ 여기까지 왔다. 95년 우크라이나로 떠날 때 아이 셋이 다 있었고, 막내가 한 돌이었다. 아내와 의논을 먼저 했고, 정상적인 치과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자는 마음 하나로 떠났다.”

- 우크라이나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1995년에 시작해 2000년까지 5년 동안 파송됐다. 우크라이나가 1999년에 개방됐으나 굉장히 열악해서 설탕도 한 번에 1㎏까지만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거의 대부분의 가게가 정부에서 운영하는 체제였고, 배급제보다는 좀 낫지만 물자가 별로 없어 힘들었다. 달러만 받는 상점이나 외국인 전용 상점을 많이 이용해 현지인보다는 좀 나았다.

구소련 지역은 외국인에게 공식 의료 면허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수도가 아닌, 테르노필 주의 주립병원 원장과 그 주 안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계약을 하고 면허증을 받았다. 예전 우리나라의 한지 치과의사 같은 건데, 이걸로 빈민 무료진료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선교사들은 의료장비나 물품을 교회 등에서 받는데, 저는 미국·캐나다 YWAM 조직 소속 스탭으로 일했으므로 이쪽에서 물자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의료용품은 좀 큰 대도시의 재료상을 찾아가서 재료나 장비를 사서 썼다.

- 어려움은 없었는지.

생활여건은 좋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에선 재미있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테르노필은 인구 30만 정도의 도시인데 우리가 유일한 동양인 가족이어서 주목을 많이 받았다. 버스 정류장에 서있으면 지나가는 버스의 승객들이 차가 떠날 때까지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장 어려웠던 건 비자 문제였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 국내에서 1년씩 연장했으나 6개월, 3개월 단위로 짧아지더니 나중엔 미국 비자 외에는 우크라이나 국외로 나가서 비자 갱신을 해오라고 했다. 밤 열차를 타고 인근 헝가리 등에 나가서 비자를 갱신했는데, 소련 철도는 광궤이고 동유럽은 협궤임에 따라 국경에서 열차를 하나씩 들어올려 바퀴를 교체한 뒤 출발하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 우크라이나 다음엔 어디로 갔나.

강지헌 선교사(중)와 부인 주수경씨(좌), 한상환 몽골 에바다치과 설립자가 프로젝트 에바다 부스 앞에 나란히 섰다..

“2000년 12월 24일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선교사로 몽골에 파송됐다. 울란바토르에는 한상환 장로님이 94년 개원한 에바다치과병원이 있는데, 여기서 선교사 지원 요청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2014년까지 사역을 했는데, 94년 개설 당시 들어온 기계를 그때가지 사용해 열악했다. 제가 가서 시설 개선을 계속해서 CAD/CAM과 CT 등 최신시설을 갖췄고, 국립몽골치과대학의 수련병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에바다에서는 진료와 함께 몽골치과의사에 대한 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한국의 치대나 개인병원 등으로 연수를 계속 보냈고, 네오바이오텍 등의 업체와도 협조해 임플란트 교육도  열심히 했다.”

- 에바다치과병원이 지금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다른 선교사가 있는가.

“현지 치과의사 교육은 제가 몽골을 떠날 때를 생각해서 집중한 것이다. 2014년 몽골을 떠나면서 현지인들의 독자적 운영이 가능하겠다고 판단했고, 통합총회와 협의해 제자에게 이양했다.

지금 원장 2명에 직원 21명 규모인데, 실제 운영을 맡겨보니 우리보다 더 잘해서 얼마 전엔 건물까지 샀다. 이걸 본 지인들이 농담으로 ‘좀 더 빨리 떠나지 그랬어’ 하며 웃곤 한다.”

- 말라위에는 어떻게 갔는지. 향후 계획도 궁금하다.

“2015년 국재개발기구의 지역조직인 열매나눔재단의 말라위 지부장으로 갔다. 계약이 올해 말까지이므로 이제는 개발기구 일보다 치과의사로서 진료와 교육에 집중하는 생활을 할 계획이다.

말라위에는 치과대학이 없고 3년제 치과학교가 있어서 한 학년당 15명 정도의 준 치과의사를 배출하고 있다. 이들은 시술과목이 제한돼 발치와 때우는 것만 가능하고 신경치료나 보철은 안 된다. 말라위 전체에서 정식 치과의사는 23명이 있으며 대부분은 외국인이고 현지인은 7명이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부터 말라위 치과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몽골 에바다와 같은 치과병원을 세워 진료도 할 계획이다. 몽골 에바다치과는 진료비가 꽤 높아서 장관과 같은 고위 관료가 주로 찾는 고급병원이다. 여기서 나온 수익으로 무료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무료병원도 에바다와 같은 수준의 재료와 진료를 제공한다.”

- 말라위 치과의사 면허가 없지 않은가.

“외국인 치과의사는 말라위 국립병원 치과에서 6주 동안 오리엔테이션을 마치면 현지인 원장의 사인으로 치과의사 면허증을 받을 수 있고, 말라위 면허기관에 가면 면허를 받을 수 있다. 이번에 한국 오기 전에 오리엔테이션 과정을 마쳤으므로 돌아가면 면허를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말라위 면허로 몽골의 에바다치과병원과 같은 형태의 치과를 개원해 수익이 나면 무료병원을 설립해 운영할 계획이다. 말라위는 몽골보다 더 가난해서 역량이 되는대로 진행할 것이지만 프로젝트 이름은 ‘입이 열려라’는 뜻의 에바다를 이어받아 그대로 추진할 것이다.”

- 말라위에서도 교육에 집중할 생각인지.

강지헌 선교사(가운데)가 지난 3일 열린 치과의료선교대회에서 김명진 치과의료선교회장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렇다. 한국과 몽골, 말라위 네트워킹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먼저 한국에서는 선교에 의향이 있는 젊은 치과의사를 일정 기간 훈련시켜서 말라위로 파송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다. 이들은 말라위 에바다치과에서 1~2년 동안 사역한 뒤 선교생활을 계속하든 그만두고 돌아가든 선택토록 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훈련은 페이닥터 형태로 몇몇 동문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몽골 에바다치과병원은 진료를 위한 시스템, 즉 임플란트의 경우 모터와 키트 등 임플란트 진료를 위한 전체 시스템을 투자하고, 몽골 치과의사가 1년에 한두 번 말라위에 와서 교육과 진료도 맡게 할 것이다.

말라위 에바다는 여러 단체와 사람들의 후원으로 만드는 것이므로 현지인에게 교육 등으로 돌려줘야 한다. 진료는 의사가 좋지만 치과의사 자체가 적으므로 현지 준 치과의사 한두 명을 고용해 실시할 계획이다.

대부분의 선교사는 외국인이다. 이들은 손님으로서 브릿지 역할은 가능해도 현지인보다 더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지를 떠나더라도 어려움이 있을 때는 조언을 해줘야 한다. 몽골 에바다의 경우 지금도 카톡 등으로 자주 의견을 구해오고 있어서 몽골어를 잊지 않고 있다.”

-실시간 치과전문지 덴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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