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심사’로 갈등골 깊어지는 의-정
‘분석심사’로 갈등골 깊어지는 의-정
  • 박수현 기자
  • 승인 2019.08.2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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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분석심사 선도사업’을 강행하며 의료계와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의과대학 교수 회원들에게 분석심사와 관련한 위원회에 참여 거부를 해달라는 입장문을 보내 정부와의 갈등의 골이 더욱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은 27일 입장문을 통해 “심평원이 추진 중인 분석심사는 의사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심사체계가 아닌 사실상 의료비용을 통제하는 ‘질평가’ 수단으로 변질돼 심사의 범위와 심평원의 권한을 확대하고 최선의 진료를 저해할 것”이라며 “(교수님들께) 분석심사 관련 위원회인 ‘PRC(전문가심사위원회)’와 ‘SRC(전문분과심사위원회)’의 위원 추천 요청이 들어와도 거부해달라”고 당부했다.

최 회장은 “급진적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케어’로 인한 막대한 재정 지출로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분석심사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의료비 지출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며 “OECD 평균보다 비상식적으로 낮은 의료 수가와 각종 불합리한 건강보험 급여기준과 같은 열악한 진료 환경의 근본적인 개선 없이 새로운 평가항목을 도입한다고 해서 ‘심평의학’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분석심사 시범사업은 의사의 참여 없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어서 의대 교수들이 힘을 실어준다면 의협이 정부를 압박해 원점에서 제도를 재논의하도록 하겠다”고 호소했다.

최대집 회장의 이같은 초강수는 의협이 분석심사 추진을 반대하자 심평원이 대한병원협회나 지역의사회, 개별학회 등을 통해 교수들에게 분석심사 관련 위원회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심평원은 최근 대한의학회에 PRC 위원 추천을 의뢰해 대한병원협회와 의학회에서 추천한 위원으로 전체 7명의 PRC 위원 중 5명의 위원 구성을 마친 상태다. 이로써 개원의 단체 몫인 2명의 위원 추천만 남겨놓았다.

심평원이 추진하고 있는 심사체계 개편 방안인 분석심사는 지금처럼 진료 행위 건별로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적합한지를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진료 평균치를 설정하고, 이를 벗어나는 진료행위에 대해서는 집중 심사를 통해 진료비를 삭감하는 방식이다.

다만 심평원의 진료 설정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바로 집중심사 및 삭감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처음엔 해당의료기관에 자율적 개선을 위한 통보가 이뤄지고, 문제가 지속될 경우 심평원 단독이 아닌 동료의사와 공동으로 현지조사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양질의 진료를 담보하는 합리적인 급여기준과 적정한 보상이 전제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의료행위의 질 평가부터 내세워 심사의 근거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격”이라며 분석심사 시범사업에 대해 반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와 심평원이 의학적 근거와 전문성 존중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심사평가체계 개편과 이를 위한 분석심사 시범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의료의 질 평가라는 명목 하에 심사의 범위와 권한을 확대해 규격화된 진료를 강요하고 궁극적으로는 의료비용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의료기관의 행정을 불편하게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내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분석심사 사업 일체를 거부한다”며 “시도의사회 및 각 직역단체와 협력해 이 시범사업을 무력화함으로써 의료계와의 합의가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사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지난 26일 성명서를 통해 “분석심사 선도사업 지침를 보면, 정부가 분석심사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지불제도 개편을 포함한 의료비 통제이면서 의료의 자율성을 더욱 제한하는 방향으로 관치의료 시스템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며 “선도사업 지침에서 발표된 세부 분석지표들을 보면, 분석심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그 증거로 분석심사 선도사업 지침의 후반부 별첨에 있는 ‘주제별 분석심사 대상 및 분석지표’ 항목을 예시로 들었다. 분석심사 선도사업에 포함된 질환이나 수술은 총 5개로 고혈압, 당뇨병, 만성폐쇄성폐질환, 천식, 슬관절치환술이다. 이 중에서 슬관절치환술은 종별에 관계없이 모두 분석심사의 대상이 됐으며 나머지 4개의 질환들은 의원급 의료기관들에 한해서만 분석심사의 대상이 됐다.

병의협은 “각 항목에 나와 있는 분석지표들은 의료의 현실을 반영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의료의 왜곡과 질 저하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분석심사 선도사업에서의 임상영역 지표들은 대부분 각 학회 등에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선정됐는데, 이것이 실제 임상현장과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병의협은 “가이드라인은 의학의 발전에 따라서 항상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내용들을 심사 지표로 만들어버리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비판했다.

앞서 대한개원내과의사회도 지난 5일 대회원 서신문을 통해 “의협의 분석심사 전면거부 결정에 따르고자 한다”며 “회원들께서는 고혈압, 당뇨 환자 진료 시 복지부의 고시 내용에 나오는 측정 혈압수치, 당화혈색소 수치를 MX999란에 기입하지 마시고 이전처럼 진료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분석심사 대상은 만성질환(고혈압, 당뇨병, 만성폐쇄성폐질환, 천식), 급성기진료(슬관절치환술), 초음파·MRI 등 총 3개 영역, 7개 질환으로, 고혈압 환자를 진료하면 혈압 결과를, 당뇨병 환자는 당화혈색소(HbA1c) 검사 결과를 특정 내역란에 별도로 기재해야 하는데 이를 거부하자는 것이다.

내과의사회는 “수치 기입을 하지 않아도 현재 불이익이 없으니 안심하시길 바란다”며 “의협과 뜻을 모아 대정부 협상을 통해 회원님들의 권익을 지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좌훈정 부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처음부터 의료계의 반대가 극심한 것은 아니였다”며 “현재의 상황이 쉽게 결정된 것이 아니”라고 털어놨다.

좌 부회장에 따르면 처음에 경향심사란 이름으로 시작된 게 문케어였다. 정부에서 경향심사를 들고 나왔을 때 뭐지라는 생소함 내지는 당황스러운 분위기였다. 그 당시 지불제도 개편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에 경향심사 이야기가 나오니 맞물려서 지불제도개편과 경향심사를 한 묶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분석심사 이전에 경향심사 자체보다는 지불제도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볼 수밖에 없었고, 결국엔 심사체계개편이 어떤식으로 진행 되던지 지불제도개편과 관련이 됐을거다라고 판단했다는 것이 좌 부회장의 설명이다.

좌 부회장은 “처음엔 들어가서 보자라는 이야기도 없지 않았지만 문케어의 진행상황을 보면서 대부분의 이사들이 ‘이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배제되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이미 기울어진 회의에 억지로 끌려들어갈 순 없다. 불이익이 생기게 됐을 때 ‘너희 회의에 참석하고 왜 딴소리냐’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있는 상태여서 제도를 개선하고 수정하기엔 이미 부정적 인식이 강했고 결국 들어가서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전면 보이콧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의사들이 들어가기 힘든 구조를 만들어 놓고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좌 부회장은 “분석심사 결과 나오려면 멀었다. 1년이든 2년이든 해봐야하는데 (자칫 회의에 참석했다가는) 그 과정에서 결국은 실리도 잃고 명분도 잃을 수 있다. (의료계에는) 의약분업 때 겪은 어떤 데자뷔 내지 트라우마가 있다. 안하려면 처음부터 안해야지 들어가서 바꾸는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틀을 갈아엎고 시작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심평원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기존제도인 건별심사, 기준심사에서 뭔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심평원을 믿어볼 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석심사도 심평원의 나쁜뜻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텐데, 의사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제도를 운영하니 우리가 이럴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좌 부회장은 “결국 제도가 파행됐을 때 피해자는 환자다. 정부의 주장대로 강행돼서 좋아진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 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때 누군가의 책임이 뒷따르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우리는 현장에서 환자를 보는 입장에서 예측하는 거다. 삭감된다면 누가 진료를 제대로 하겠나. 문케어 시행으로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생겨 보통 보름이면 받을 수 있는 진료를 2~3달을 기다려 받고 있다. 여러 가지 서비스의 질 저하라던지 불편함이 생기고 있다. 다각도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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