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외과학회 ‘수술실 CCTV 설치 법안 철회’ 촉구
5개 외과학회 ‘수술실 CCTV 설치 법안 철회’ 촉구
  • 박원진 기자
  • 승인 2021.08.3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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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의사들이 30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과 관련,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대한신경외과학회, 대한외과학회,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비뇨의학회 등 5개 외과계 학회는 휴일인 29일 긴급공동성명을 내고 “진정 세계 최초로 대한민국 외과계 의사들의 손목을 묶길 원하십니까?”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성명은 “일부 수술 과정에 대한 의혹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여 이 법안이 발의될 수밖에 없게 한 점에 대해서는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불거질 수 있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나열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외과의사들이 제기하는 법안의 문제점은 크게 5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의료 사고 및 분쟁에 대비하여 최소한의 방어적인 수술만을 하게 될 것이며 이는 환자의 생존율과 회복율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수술 과정을 CCTV로 녹화할 경우, 의사들은 향후에 영상으로 인하여 발생할 의료 분쟁을 우려해 수술을 소극적으로 진행할 것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악성 암환자의 경우 후유증이 남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절제를 하는 것이 암의 완치율과 생존율을 높일 수 있지만, 이러한 과정이 녹화되고, 이러한 것들이 향후 의료 분쟁의 증거로 사용된다면, 의사들은 소극적으로 수술에 임하기 때문에 암환자들의 재발률과 사망률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다.

둘째, 응급수술이나 고위험수술은 기피하게 되어 상급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심해지고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증가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셋째, CCTV 녹화로 수술과 관련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돼 있어 실질적으로 환자에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집도의의 수술집중도만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환자의 신체가 녹화됨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2차적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다섯째, 의사들의 외과계 지원 기피로 의료 체계의 붕괴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젊은 의사들이 외과계를 기피하는 상황에서 CCTV 녹화가 의무화될 경우, 이것이 더욱 심화되어 전국에 외과계 의사 부족으로 수술을 못하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성명은 “극히 일부 외과계 의사들의 잘못된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수많은 외과계 의사들의 손목을 묶어 수술이 꼭 필요한 대다수 국민들의 생명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을 철회하여 주시고 의사들 스스로 자정 노력과 함께 극히 일부 의사의 일탈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대책을 마련하여 주실 것을 간곡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그러면서 “대한민국 수술 성공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앞으로 우리 외과계 의사들은 지금까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무한히 갈고닦았던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한편,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논쟁은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경기도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의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의료진 보호를 위해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2014년 가수 신해철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환자 보호를 위한 수술실 CCTV 설치에 무게가 실렸고 관련 법안은 2015년 처음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 새로 발의된 3개 법안이 하나로 통합돼 지난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 25일 법제사법위원회를 잇따라 통과했다. 

이 법안은 30일 본회의 의결만 남기고 있는데, 통과되어도 2년의 유예기간이 있고 ‘환자가 동의해야 촬영한다’는 단서 조항이 달리면서 누더기 법안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병원측이 “CCTV를 설치할 경우 수술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밝힐 경우, 촬영에 동의할 수 있는 환자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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