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의료원 “상급종합병원 새 기준 제시할 것”
정밀의료, 신의료기술 등 선제적 도입 ... 진료 프로세스도 전면 개편 수익구조 다변화 통한 경영 안정화 실현으로 혁신의료 재투자 장애인 고용률 100%, 방글라데시·칭다오에 ‘세브란스’ 건립 등
“연세의료원이 신의료기술, 신약 등 혁신의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최(最)상급종합병원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
세브란스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연세의료원이 상급종합병원(일명 상급종병)의 역할을 넘어선 최상급종병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 관심을 끌고 있다.
금기창 연세의료원장은 19일 연세대학교 백양누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열고 “혁신의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필수의료체계를 구축해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을 넘어 초고난도질환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상급종합병원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연세의료원은 국내 최초로 중입자치료, 로봇수술 등 신의료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국내에 중증난치질환 치료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가동을 시작한 중입자치료의 경우 이달 초까지 전립선암 378명을 비롯해 췌담도암 45명, 간암 6명, 폐암 8명이 치료를 마쳤다. 지금까지 심각한 부작용 보고는 없었다. 내년 상반기 회전형 치료기를 추가로 가동하면 두경부암 등 적용 범위가 확대되고, 치료 환자 수도 늘어나게 된다.
세브란스병원은 세계 최초 단일기관 로봇수술 4만례 달성을 비롯해 로봇수술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많은 전문분야에서 세브란스의 술기가 국제표준이 되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존슨앤존슨과 차세대 수술로봇, 디지털 수술 플랫폼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폐암과 위암 등 암 분야에서 다국가 임상연구 결과를 세계적 학술지에 게재하며 암 치료를 주도하고 있기도 하다. 심장혈관분야와 소화기내과, 종양내과 분야에서도 우수한 논문을 NEJM이나 JAMA, 란셋 등 세계적 학술지에 발표하고 있다.
여기에 앞으로 의학 패러다임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경쟁 우위를 선점하고, 정밀의료를 고도화한다는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올해 5월 희귀유전성 질환의 진단과 치료, 연구를 위해 임상유전과와 소아신경과 등 17개 진료과 22명의 전문의가 참여한 하님정밀의료클리닉을 개소한 바 있다. 신의료기술의 선제적 도입을 위한 제도나 지침 등도 마련한다.
금기창 의료원장은 “글로벌 임상연구를 주도하고 신의료기술 등 혁신의료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초고난도 중증질환자들이 세브란스에서 진료를 못 받는 상황이 없도록 시스템도 전면 개편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병원의 모든 기능 초고난도질환 치료 기반 전환
이에 따라 병원의 모든 기능을 초고난도질환 치료 기반으로 전환한다. 이를 위해 의료원 산하 각 병원은 기존의 일반·단기병상의 비중을 줄이는 등 중증질환 중심으로 인프라를 전환하고 있다. 전문의 중심 진료체계 구축 TF도 구성했다. TF를 중심으로 각 병원은 전문의 비율을 확대하고 입원전담전문의를 활성화하는 등 전문의 중심 진료체계로의 전환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연세의료원은 초고난도 질환 중심으로 시스템 전환과 미래의료에 대한 투자를 위해 경영 안정화에도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금기창 의료원장은 “의료환경의 변화로 당장 의료이익은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이제 진료수익만으로는 미래의료를 준비하기 힘들다”면서 “혁신의료나 필수의료체계 도입 등을 위한 미래 발전동력으로 진료 외에도 다양한 수익구조를 만들어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연세의료원은 의정갈등이 시작된 올해 의료수익으로 상반기만 1200억 원이 넘는 손실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에 참여하며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지만 경영손실은 불가피할 전망이는 것. 이에 연세의료원은 연구기술 분야를 비롯해 다양한 수익구조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현재 의과대학은 163억 원, 치과대학 156억 원, 간호대학은 7억 2000만 원을 연구를 위해 교수들에게 과제별로 최대 2년까지 지원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의료질 향상을 위해 매년 20억원씩을 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지원이 국내 최초 수부이식 수술이라는 임상 성과는 물론 진단 소프트웨어 개발, 세계적인 의학저널에 신의료기술 등재 등으로 이어졌다.
R&D 기획서비스나 연구 수주 역량을 높이기 위해 연구개발지원 그룹을 신설하는 등 연구지원시스템도 고도화했다. 데이터연구 활성화를 위해 디지털헬스 인프라를 강화하고, 신진교수의 연구정착을 위한 지원금도 올해 상반기에만 16억원 넘게 지원했다. 맞춤형 전담특허사무소 제도를 운영하고, 특허나 기술이전 관련 전문인력 육성, 교수창업 컨설팅도 지원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올해 10월까지 305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기술이전은 23건으로 계약액은 117억 원에 이른다.
연세대 바이오헬스기술지주회사는 지난해 전·현직 동문들로 구성된 기부형 펀드 ‘세브란스 MD 개인투자조합’을 결성하고 투자기관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민간투자사와 의료원 최초의 벤처투자조합을 결성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벤처투자조합은 국내 최초의 산학협력 펀드이자 대학 동문 네트워크 기반의 펀드로, 우수한 기술과 사업성을 보유한 바이오헬스 분야의 유망기업을 발굴해 세계적인 바이오헬스기업으로의 성장을 지원한다. 투자 수익 일부는 학교의 R&D에 재투자해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지금까지 약 90억원의 투자금액을 운용하며, 11개 기업에 투자했다. 현재 투자기업의 총가치는 2035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는 연세대 교수창업 벤처들도 포함된다.
모금 활성화를 통해 나눔문화가 환자치료와 연구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부금 운영체계도 손본다. 기관별, 목적별 전략을 세워 필요한 나눔이 현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향후 7년간 ‘거액모금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 환자지원을 위해 33억 7700여만 원이 모였고, 연구기부금은 17억 원이 넘는 기금이 모금됐다. 특히 익명의 기부자는 의과대학 교육과 연구활성화 목적으로 1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후원했다.
금기창 의료원장은 “특허와 신의료기술 등 연구개발 기술을 통한 수익이 미래의료를 위한 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거액모금캠페인을 통해 사회적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거액모금캠페인이 전개되면 제약회사의 지원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연구력 향상 위한 하드웨어 구축해 의사과학자 육성 박차
신축 의과대학 건립 추진 … 융합연구 연구동 조성도 논의
연세의료원은 의과대학을 연세대 알렌관 부지로 확장 이전한다. 신축 의대는 지하 6층부터 지상 7층으로 건물연면적은 7만 7815㎡다. 기존 의대 대비 실사용면적이 50% 늘어나게 된다. 강의실은 토론식 수업을 위한 소형강의실과 임상실습을 대체할 트레이닝센터, 디지털정보센터 등이 들어선다. 여기에 융합연구와 글로벌 연구경쟁력 확보를 위한 융합연구공간도 조성된다.
이런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의사과학자 양성과 융합연구를 활성화한다. 연세대 의과대학은 10여 년 전부터 의과학자 양성을 위해 학부와 대학원, 신진교수를 대상으로 전주기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지난해까지 327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부족한 연구공간도 확충한다. 연세의료원의 연구실적은 10년간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지난해인 2023년 진행된 연구는 1090개로, 2013년의 660개보다 1.7배 늘어났다. 연구비 역시 지난해 1650억 원으로 2013년(710억원) 대비 2.3배나 증가했다. 연구원 수도 대폭 증가했다. 이에 따라 부족한 연구시설 확충과 타분야와의 융합연구를 통한 기술발전을 위해 연구동 건립도 계획 중이다.
세브란스 정신 실천해 소명 완수
장애인 고용 100% 달성 등 사회적 책무 실현
방글라데시·中 칭다오에 ‘세브란스’ 건립
연세의료원은 다양한 나눔 활동을 통해 세브란스 정신을 실천하며 사회적 책임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금기창 원장은 “지금도 해외 의료 취약국의 의료인력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1993년부터 시작한 에비슨 인터내셔널 펠로우십 과정에 몽골국립의과학대학교 교수들을 시작으로 매년 해외 의료인 30여명을 초청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로젝트 에비슨 10x10은 의과대학 학생을 선발해 교수로 성장할 때까지 지원한다”며 “2018년 시작해 네팔, 케냐, 짐바브웨 등 총 19명이 연수를 받았다”고 소개했다.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중증응급환자 지원 프로그램인 선한 사마리아인 SOS 프로젝트는 10주년을 맞았다. 프로젝트에는 23개 교회, 38명의 후원자를 비롯해 기업과 단체 등이 참여해 총 13억 7800여만 원이 모금돼 651명의 환자를 지원했다. 의료소외국 환자 초청치료 프로그램인 ‘글로벌 세브란스 글로벌 채리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금까지 31개국 252명에게 직접적인 치료 혜택을 주기도 했다.
KT와 진행 중인 캄보디아 난청 환아 지원 프로그램인 KT꿈품교실에서는 지난 5년간 8500여명의 아이들이 언어치료 등 재활치료를 받았다. 연세의료원은 현지 아동의 인공와우 수술과 함께 언어치료 강사 교육, 집단프로그램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장애인 고용률 100%도 실현한다는 방침이다. 연세의료원의 경우 371명의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 현재 211명을 고용 중으로 올해 말까지 279명을 고용할 계획이다. 약자를 배려하고 함께 사는 사회적 풍토를 정착하기 위해 향후 장애인 고용률 100%를 실현할 계획이다.
연세의료원은 방글라데시에 영원무역과 함께 의료기관과 교육기관을 망라한 메디컬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영원무역의 제안으로 1월 기공식을 가진 메디컬센터는 2026년 개원이 목표다. 100병상 규모의 파일럿병원과 5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 등이 들어선다. 연세의료원은 지금까지 펼쳐온 다양한 해외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방글라데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어 방글라데시에 선진의료를 전파하는 세브란스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에는 지하 1층에서 지상 8층, 300병상 규모의 칭다오 세브란스 재활병원(가칭)이 내년 10월 개원한다. 재활과와 중증의학과, 내과, 외과 등으로 구성되며 CT와 고압산소치료기, 로봇재활치료기 등 최신장비를 구비한다.
“의료 정상화되려면, 정부가 의정사태 해결해야”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정부의 지원과 사회 각층의 관심, 후원이 필요하다는 금기창 의료원장의 제언도 있었다.
금 의료원장은 “무엇보다 대한민국 의료가 정상화 되고 우수한 의료인력이 배출되기 위해 현 정부가 적극적으로 의정사태를 정리해야 한다”면서 “우수한 인력과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기관의 체질 개선을 위해 필수의료를 포함한 의료수가의 현실화는 물론, 필수의료 전문의 확보를 위해 의료사고특례법 재고 등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병원에서 환자 진료를 위해 발생되는 비용을 공적인 비용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금 원장은 전기요금을 예로 들며 환자 치료에 쓰이는 전기가 산업용 전기세가 아니라 일반용 전기세를 적용받는다고 지적했다. 연세의료원의 신촌지역 1년 전기세는 220억 원이 넘는다.
금 의료원장은 “최신 의료장비의 경우 전기 사용량이 많아 전기세 부담이 크고, 의료기관의 카드 수수료도 2% 정도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런 의료기관의 비용이 줄어들면 결국 그 혜택은 환자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