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사대표자대회 “잘못된 의료정책 중단해야”

“정부 2000명 증원 취소돼야” ... “정상적 의대 교육 불가능”

2024-12-23     박원진 기자

대한의사협회는 22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의료 농단 저지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열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의료계 단체행동이다. 

의료계 전 직역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이날 대회에서 의료계는 윤석열 정부를 향해 내년도 의대 모집 중단을 촉구하고 중단이 안 될 경우 늘어나는 의대생들을 분산시켜 순차적으로 교육시키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 16개 시·도의사회장과 의협 대의원들, 의대교수, 전공의·의대생 등 각 직역 대표 200여명이 참석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정책위의장 등 일부 정치권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의협은 2025년도 의대 증원 중단을 중심으로 일곱가지 요구사항이 담긴 결의문을 채택했다. 의료계 대표로 결의문 낭독에 나선 박형욱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합당한 근거와 절차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한 의대 2000명 증원은 취소돼야 한다”며 “정부가 이런 경고를 무시한다면 2026년 의대 모집을 중지하고 급격히 증가한 의대생들을 순차적으로 교육시키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계 대표들은 결의문에서 “필수의료정책패키지 등 지난 2월부터 정부가 독단적으로 추진한 의료개혁 방안을 철회하고 전공의 사직과 의대생 휴학은 인권이자 기본권이므로 이를 침해한 공직자들을 직권남용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계엄사령부 포고령에 전공의와 의사를 ‘처단한다’는 폭언을 한 책임자를 규명하여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2일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오늘 회의에서 2025년 의대 정원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런 부분들은 우리나라 법 체계상 기본적으로 행정부에서 결정해야 한다”며 “그래서 끝까지 행정부, 교육부 장관이라든지 이런 분들을 설득해 나가야 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대로 진행되면 (내년에) 의대 한 학년이 7500명이 되는데, 만약 (2025년도) 신입생들이 ‘교육권 훼손을 참을 수 없다’고 하면 (2026년도에는) 1만 2500명의 학생들이 한 학년에서 수업을 받는 일도 벌어질 수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내년 의대 신입생들이 휴학을 이어갈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박형욱

박 위원장은 그러면서 “(내년에) 7500명이 들어와서 6년을 간다고 하면, 의학 교육 현장에 있는 사람은 너무나 당혹스럽다. 그래서 결국에는 분산을 시키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며 “해부학 실습 등 여러가지 기초 의학 실습, 임상 실습을 전국 의과대학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비공개 회의에서 일부 개원의들은 진료 시간 단축을 통해 대정부 투쟁을 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의협은 당분간 국회를 통해 정부에 의료계 측 요구사항을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박 위원장은 “국회 교육위원장과 보건복지위원장이 주선을 해서 23일날 교육부와 비대위가 같이 논의를 할 것”이라며 “공식적인 여야정 협의체라든지 공론화 위원회 같은 것들은 여러 제안이 있었는데, 앞으로 의견을 모아서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와 의료계) 대화 재개를 위해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가 필요하지 않겠나”라며, “전공의 처단 포고령에 대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특히 “여야의정협의체를 다시 구성하고 정부 여야 의료계가 긴급협의체를 구성해 2025년 의대증원 문제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혁신당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지금 정시모집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각 의과대학에 그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라며 “의대 교수, 대학 총장들이 앞장서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전국의사대표자대회 결의문 전문이다. 

의료농단 저지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전국의사대표자대회 결의문’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농단”은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의 국격은 추락하고 안보도 경제도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필요할 때는 헌법과 법률을 들이대고 필요할 때는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다. 비상계엄의 근거는 없으며 국무회의는 허수아비 회의로 전락했다. 그는 대책도 없이 그저 “왕놀이”를 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계엄 농단에 온 국민은 심한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다행히 “계엄 농단”은 중단되고 우리 사회는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지속된 “의료 계엄”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2월 6일 조규홍 장관은 느닷없이 2,000명 의대 증원을 발표했다.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는 허수아비 회의였다. 입시를 불과 7-8개월 앞둔 시점에서 전국 의대생 정원의 67%를 증가시키는 “광인의 행정”을 하는 나라는 없다.

보건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와 증원 규모에 대해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4월 1일 온 국민 앞에서 정부가 무려 19차례나 의협과 증원 규모를 논의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도저히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라고 할 수 없는 것을 들이대며 과학적 근거라고 강변했다.

더 심각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전공의와 의대생에 가한 폭언과 협박, 인권유린이다.

2월 16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은 힘없는 전공의들을 향해 “법정 최고형”을 운운하면서 협박했다. 야당 정치인이 기소도 되기 전 행정부 차관이 그를 향해 “법정 최고형”을 운운할 수 있는가? 보건복지부는 사직서수리금지명령으로 무려 3개월간 전공의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

2월 21일 정부는 전공의의 불법 행동이 국가존립을 위협한다고 떠들었다. 중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전공의들에게 국가의 존립을 맡겨 놓았다는 주장은 얼마나 황당한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법적 근거도 없이 자발적인 의대생들의 휴학을 무려 8개월간 막았다. 대학 총장들이 교육부의 횡포에 입도 벙긋 못하는 현실은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법치주의의 위기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대학 총장들은 정부에 이런 굴종적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벌써 오래 전 의대생들의 진급이 불가해졌는데 이주호 장관은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설득하겠다만 반복했다. 급기야 교육부는 ‘수업을 안 들어도 시험만 치르면 진급시키겠다, F 학점을 받아도 일단 진급시키겠다’ 등 의학교육의 질을 파괴하는 정책을 소위 “의대교육 선진화방안”이라고 내놓았다.

계엄사령부가 전공의와 의사를 향해 “처단한다”라는 극단적 폭언을 한 것은 이런 의료계엄의 연속선상에 있다. 비상 계엄 해제 후 한덕수 총리는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을 향해 사죄하였다. 그러나 전공의들을 향한 극단적 폭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사죄도 하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하자. 그래도 입시가 불과 7-8개월 남은 상황에서 기존 발표를 뒤엎고 의대 정원을 50% 증원하는 것은 “광인의 행정”이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전공의, 의대생, 의사를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는 것은 폭력적 “의료 계엄”이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 박민수 차관, 이주호 교육부장관,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합당한 근거와 절차를 제시하여 윤석열 대통령을 설득하기는커녕 오히려 폭력적 “의료 계엄”에 부역한 공직자들이다. 이들의 견강부회로 의학교육과 의료현장은 처참히 파괴되고 있다.

2025년 전공의 1년 차 지원은 0, 1, 2, 5로 대표된다. 방사선 종양학과는 26명 모집에 0명이 지원했다. 산부인과는 188명 모집에 1명이 지원했다. 심장혈관흉부외과는 65명 지원에 2명이 지원했다. 응급의학과는 224명 모집에 5명이 합격했다.

올해 본과 4학년 중 내년도 의사 국시 응시자는 약 160명이다. 과거 불합격자들이 응시해도 예년보다 약 2,700명 정도 의사 배출이 줄어든다. 그리고 이 숫자만큼 연이어 인턴 부족, 전공의 부족, 공보의 혹은 군의관 부족으로 이어진다. 지방 대학병원은 교수들이 버티다 사직 행렬로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보건복지부가 필수의료/지역의료를 살리겠다며 만들어 놓은 처참한 현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개혁이 시급하다면서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환자가 죽었는데 암을 잘 떼어 냈다고 좋아하는 의사를 보는 느낌이다.

의학교육은 더 처참하다. 한 학년 3,000명을 가르치던 전국 의과대학이 최대 7,500명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내년에는 최대 한 학년 12,500명을 수용해야 하는 교육 불능의 사태에 빠질 것이다. 이는 10년 이상 의학교육을 파탄으로 몰 것이다.

곧 의학교육과 의료현장을 파괴한 공직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의학교육과 의료현장은 10년 이상 혼란과 갈등에 처할 것이다. 공직자들이 일단 저지르고 정책의 부작용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개혁이라는 주술을 읊다가 자리를 떠나 편안히 지내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이에 전국 의사 대표자들은 교수, 개원의, 봉직의, 전공의, 의대생 등 의료계 전 직역의 뜻을 모아 국회와 정부에 아래와 같이 강력히 촉구한다.

첫째, 도대체 누가 의대 2,000명 증원을 결정한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인가? 아니면 무속인인가? 보건복지부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자료와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 만일 의대 2,000명 증원을 윤석열 대통령이 결정했다면 국회는 조규홍 장관의 위증을 고발해 처벌받게 해야 한다.

둘째, 윤석열 대통령은 온 국민 앞에서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증원 규모에 무려 19차례나 협의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또한 대통령이 온 국민 앞에서 거짓말을 하게 된 과정을 밝혀 관련 공직자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셋째, 합당한 근거와 절차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진행한 의대 2천명 증원은 취소되어야 한다. 2025년 의대 모집은 최대한 중단해야 한다. 정부가 이런 경고를 무시한다면 2026년 의대 모집을 중지하고 급격히 증가한 의대생들을 순차적으로 교육시키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필수의료정책패키지 등 지난 2월부터 정부가 독단적으로 추진한 의료개혁 방안을 철회해야 한다. 필수의료가 망가진 것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한 정책의 실패다. 이제 의료현장의 경험과 목소리가 우선될 수 있도록 의료정책의 거버넌스를 바꾸어야 한다.

다섯째, 전공의의 사직과 의대생의 휴학은 인권이자 기본권이므로 이를 침해한 공직자들을 직권남용으로 처벌해야 한다. 사직서수리금지명령으로 전공의의 기본권을 침해한 조규홍 장관, 박민수 차관을 직권남용으로 처벌해야 한다. 대학 총장들의 휴학을 막아 의대생의 기본권을 침해한 이주호 장관과 오석환 차관을 직권남용으로 처벌해야 한다.

여섯째, 사직 전공의들의 요구는 자신들은 국민으로 인정하라는 정당한 주장이며 의료계 전 직역은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전공의들이 필수의료에 헌신할 수 있게 정책을 개선하는 것만이 의료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일곱째, 계엄사령부 포고령에 전공의와 의사를 “처단한다”는 폭언을 한 책임자를 규명하여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덕수 권한 대행은 전공의와 의사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그런 폭언이 포함된 과정을 철저히 규명해 공개해야 한다.

2024년 2월 뉴스위크지는 전 세계 최고 병원 250개를 선정했다. 우리나라는 무려 18개 병원이 선정됐다. 이들은 대부분 수도권의 민간 사립대학병원이다. 그러나 약 66년 전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 아시아 최고 시설의 병원은 스칸디나비아 3국의 지원으로 지어진 국립중앙의료원이었다.

66년 동안 의사들은 이름도 없는 병원을 전 세계 최고병원으로 발전시켰다. 같은 기간 보건복지부는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 아시아 최고 시설의 병원을 상대적으로 크게 전락시켰다. 마땅히 개혁의 대상이 될 보건복지부가 열심히 진료하고 연구한 의사들을 개혁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

(다 함께 한 목소리로) 오늘 우리는/ 전국 의사 대표자 대회를 열어/ 이상의 결의를 하였다./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의료계 전 직역은/ 일치하여/ 저항과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우리는/ 윤석열 정부가 무너뜨린 의료체계를/ 앞장서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을/ 굳게 결의한다./

2024. 12. 22.

전국 14만 의사를 대표하는 전국의사대표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