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병원도 ‘마약류 관리 약사’ 의무 배치?...의료계 초비상

2025-01-24     박원진 기자

의료기관 규모와 관계없이 마약류를 취급하는 의료기관에 ‘마약류 관리 약사’를 의무 배치하는 법안이 국회서 발의된 것과 관련, 동네병원 의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의료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비현실적 법안이라는 것이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을 두고서다. 

마약류관리자는 마약류를 취급하는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약사로, 현재는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하는 의사가 3명 이하인 의료기관은 별도로 마약류 관리자를 두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개정안은 마약류를 취급하는 병원급 의료기관은 마약류관리자(약사)를 의무 배치하고, 총리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상의 마약류를 투약·처방하는 의원급 의료기관도 마약류관리자를 두도록 의무화했다. 또 프로포폴과 같은 향정신성의약품만 취급해도 예외 없이 마약류 관리자를 배치하도록 했다.

이밖에 마약류 관리자는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 과다·중복 처방 등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환자의 투약 내역을 의료기관에 요청할 수 있도록 했고 의료기관이 투약하는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이 법을 준수해 투약·제공되는지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강제 조항도 추가했다.

결과적으로 마약류 관리 약사가 의료기관의 마약류 투약 내역 전반을 들여다보고 통제·관리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개정안은 만약 마약류 관리자가 마약류 관리법을 위반하거나 마약류 관리자로서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면 지자체장이 의료기관 대표자에게 마약류 관리자를 변경하도록 명할 수 있게 했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약사

이에 대해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4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법률개정안은 기존에 병원급에만 두던 마약류관리자를, 마약이 아닌 향정신성의약품을 취급하는 1차 의원에까지 두도록 강제하여, 향정신성의약품이 마약과 똑같은 공포스러운 약인 것처럼 호도는 악법”이라고 반발했다.

의료계는 “마약과 정신질환의 치료에 사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은 엄연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한꺼번에 마약류로 분류되는 부분은 문제가 많았다”며 “이런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약사에게 의사를 감시하라고 하는 악법은 국민정신건강의 향상을 위한 치료를 방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계는 이어 “이번 법률개정안은 약사가 마약류관리를 해야한다면서도, 약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며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문진하고, 검사하여 내린 처방에 대해서 제 3자가 관리 한다면, 이 과정에 대해 약사가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이번 법률 개정안에 반발하는 또다른 이유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운영난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동네병원들은 식약처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통해, 의사 1인이 근무하는 의원에서조차 매일 마약류의 처방에 대해 보고하고 있을 정도로 진료 이외의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관계자는 “전산 관리에 미비가 있을 경우 보건소 등에서 불시에 점검을 나오기도 하고, NIMS에 미보고나 지연보고가 있으면 행정처분 등이 이루어져, 설령 관리 미비가 있어도 의료인들이 직접 책임지고 있다”며 “이처럼 자정작용과 통제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정부가 마련한 전산 시스템을 불신하고 약사를 따로 두는 것은 시대를 역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급 의료기관들은 이번 법률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해 실제 시행될 경우 영세한 1차 의료기관은 폐업의 상황까지 몰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의사 1명이 근무하는 곳까지 예외없이 마약류 관리 약사를 배치할 경우 여기에 소요되는 인건비 등의 부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신경정신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의사는 “같은 상황에 대해 동일하게, 다른 상황에 대해서는 실정에 맞는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평등”이라며 “의사 수와 관계없이 모든 의원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신경정신과 의사는 “군단위에서 약사 고용을 못해서 징역까지 받을 수 있다면, 진작 위기에 봉착한 지방의료를 마저 죽이는 것”이라며 “마약류의 처방 및 조제 과정을 굳이 제3자에게 감독받는 취지라면, 약국에도 조제와 복약지도를 하는 약사 외에 별도로 마약류 관리 약사를 배치해야 할 것인데 의원에만 이러한 법률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많은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를 비롯한 직원들이 직장을 떠나야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세계 어느 곳에도 향정신성의약품을 취급하는 1차의료기관에 약사를 두도록 강제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마약류 관리자는 의사, 수의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통제물질법(Controlled Substance Act)에서도 관리자(adminstator)의 역할을 약사에게만 부여하고 있지 않다. 중국 정부의 약품 관리법(Drug Administration Law) 역시 의료기관과 약국 모두 마약류 관리에 대한 책임을 부여한다. 

의사회 관계자는 “이번 법률 개정안은 일선 의료 단체와 어떤 협의도 없었고 의료 현실 및 국민건강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의료인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며, 중범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징역이 포함된 큰 벌금의 처벌로 과도한 강제성이 부여되는 법안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의사 1인 동네병원의 약사 고용 의무화는 지방 의료 및 1차 영세 의료기관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는 비현실적인 법안”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의료현장과 행정원칙을 기반으로 다시 한번 검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