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강행으로 빚어진 의료대란 책임 회피 의혹도 불거져
보건 당국이 추석을 앞두고 발표한 ‘응급실 진료거부 사유를 담은 지침’과 관련,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의대 증원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불리한 여론을 의식한 발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지난 13일 안전한 응급실 환경을 조성하고 원활한 응급의료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응급의료법상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 지침’을 배포하고, 3일 후인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
복지부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응급의료종사자가 예외적으로 응급의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응급의료법 제6조를 근거로 “부당한 진료 상황으로부터 응급의료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 취지와 생명 등이 위태로워 즉시 치료가 필요한 응급환자의 특성 등을 고려해 ‘정당한 사유’를 구체화했다”며 지침 배포 경위를 설명했다.
복지부는 이 지침에서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환자·보호자의 폭행, 협박 또는 장비 손상 등 응급의료종사자가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경우와 ▲통신·전력의 마비, 인력·시설·장비의 미비 등 응급환자에 대하여 적절한 응급의료를 행할 수 없는 경우 등을 꼽았다.
그러나 예시로 든 사유들은 지침이 없더라도 ‘응급의료법’ 제6조 제2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이어서 복지부가 의대 증원 강행으로 빚어진 응급실 뺑뺑이 등 의료대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특히, 정당한 사유의 예시로 든 ▲응급의료기관 인력, 시설, 장비 등 응급의료 자원의 가용 현황에 비추어 응급환자에게 적절한 응급의료를 할 수 없는 경우는 판단의 명확한 기준이 없고, 이를 판단하는 주체도 정해져 있지 않아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9일 성명을 통해 “(정부의 지침대로라면) 지난 2월 19일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이탈한 인력이 보충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 수련병원 대부분은 응급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며, “결국 이번 지침은 정부가 전공의 집단사직과 추석 연휴로 의료진이 부족한 현재 상황에서는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응급의료기관에 한 번 더 확인시켜 주는 성격의 지침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응급의료법’ 제6조 제2항은 “응급의료종사자는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를 하여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응급의료법’ 제48조의2 제2항은 “응급의료기관의 장은 응급환자 수용능력 확인을 요청받은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 또는 기피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이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응급의료를 거부할 수 있고 수용도 거부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처럼 법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은 현행 ‘응급의료법’이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법원의 최종 판단이 필요한 ‘정당한 사유’로만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의료기관이나 의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진료거부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진료거부 사유를 지침으로까지 만들어 배포하는 것은 뭔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는 19일 헬스코리아뉴스에 “복지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지침을 배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굳이 추석을 앞두고 지침을 발표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며, “법적 효력이 없는 지침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응급의료기관의 진료거부 사유는 의료진과 병상 부족이 가장 많고, 이에 따라 골든타임 이내 모든 응급의료기관이 수용곤란 상황이 되었을 때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는 “이번 추석 연휴에도 의료진 부족으로 응급의료 공백이 더욱 커질 것이고, ‘응급실 뺑뺑이’로 응급환자들이 구급차를 전전하며 생명까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질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면 정부는 응급환자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지침으로 발표할 것이 아니라 ‘응급실 뺑뺑이’ 상황에서도 응급의료기관이 응급환자를 수용해 치료함으로써 생명을 살릴 기회를 제공하는 지침을 만들어 발표하는 것부터 먼저 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