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세월무상] ‘고맙습니다. 사랑 합니다’ 한 마디 가슴 뭉클
[수필-세월무상] ‘고맙습니다. 사랑 합니다’ 한 마디 가슴 뭉클
  • 김관원 원장
  • 승인 2010.03.02 1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흐르는 세월 물줄기처럼 막을 수 있을까 기대

▲ 김관원 원장(제주특별자치도치과의사회 공보이사)
[덴탈투데이/치학신문] “아빠, 나 시집이나 갈까?”

설 명절에 잠시 집에 내려온 대학교 다니는 딸이 저녁 밥상 앞에서 사뭇 진지한 척 하는 말이다.

학교 공부가 힘들고 졸업을 해도 취업난으로 앞날이 갑갑하여 하는 농담인줄은 알지만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딸애를 보니 덩달아 내가 나이가 들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전에도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지 못한 건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날 새는 줄 모르고 술도 마시곤 했는데, 술이 약해져서 인지 아니면 마누라가 무서워 졌는지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할 때에도 이젠 초저녁부터 슬슬 꽁무니 빼기가 일쑤고, 더욱이 술 마시다 친한 친구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 당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친구 중에 또래보다 머리가 흰 친구보고 난 흰머리가 드물다고 자랑하다가도 전화가 걸려오면 손을 쭉 멀리 빼고서야 핸드폰에 적힌 글자가 아른아른 보이는 노안 때문에 멋쩍은 웃음 웃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가끔 거울 속에서 웬 낮선 중년 아저씨가 보이면,

‘어!, 저게 내 모습이 맞아?’ 하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흐르는 강물과 세월은 막을 수가 없다고들 하지만 요즘에 4대강 사업이다, 대운하 사업이다 하면서 물줄기를 막으려는 것을 보면 언젠가 흐르는 세월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욕심에 쓴 웃음을 지어보기도 한다.

길을 가다보면 이른 봄꽃들이 피어 있는 것이 종종 보인다. ‘집 나가면 개고생’ 이라는 광고도 있지만 요즘 철모르고 일찍 피었다가 늦겨울 추위에 생고생하는 봄꽃들이 가엽다가도 저 꽃들은 매년 좋은 시절 다시 찾아오지만 사람 사는 인생은 한 번 지나고 나면 다시 오지 못한다 생각하니 내가 오히려 측은하다.

공자는 나이 40을 불혹이라 했던가. ‘쭉쭉빵빵 걸’을 보면 눈 돌아가고, 첫사랑 옛 여인도 궁금한 것이 남자들 인지상정이라지만 불혹을 훌쩍 넘기고도 아직 이러니 언제면 내가 철이나 들지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려니와, 지천명을 코앞에 두고 내게 주어진 하늘의 뜻을 곰곰이 헤아려보니 치과의사란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나를 믿고 찾아주는 환자 한 분 한 분 고맙게 여기고, 퇴근하면 따스한 밥 한 공기 차려주는 여우같은 마누라, 건강하고 착한 토끼 같은 자식들, 술 한 잔 하며 이야기 세상사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들 모두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기며 살라는 것이리라. 새삼 ‘고맙습니다. 사랑 합니다’ 한 마디를 남기고 1년 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그리워진다.

이 밤, 엉뚱한 딸 아이 한 마디에 잊었던 나를 잠시 돌아보며, 올 여름엔 가족이랑 오랜만에 여행이라도 다녀올 상상을 하며 행복한 꿈속으로 잠을 청해본다.

[다음에는 유동기 원장님이 맡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