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수련규칙 개정에 전공의 ‘부글부글’
의료기관 수련규칙 개정에 전공의 ‘부글부글’
  • 안명휘 기자
  • 승인 2015.02.2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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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환경 더 열악해 지고 PA난립, 체불임금지급청구소송 등 문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4월 1일 ‘전공의 주당 수련시간 80시간 제한’을 골자로 하는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제 12조(수련규칙 및 기록의 작성·시행 등)를 개정했다. 법 개정 3개월 뒤인 7월 1일부터 각급 수련병원 및 기관은 개정된 규정에 따른 새로운 수련규칙을 적용하게 됐다.

개정된 수련규칙에는 ▲36시간 초과 연속수련 금지 ▲응급실 수련 12시간 주기 교대 ▲수련 간 최소 휴식시간 10시간 이상 ▲4주 평균 24시간 이상 휴일 제공 ▲주당 최대 수련시간 80시간 ▲주 3일 초과 당직근무 금지 ▲당직수당 지급 ▲14일간의 연가 제공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 지난해 4월 개정된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제 12조 관련 수련규칙 세부내용과 적용대상

그런데 ‘전공의 주당 수련시간 80시간 이내로 제한’이라는 파격적인(?) 법 개정과 수련규칙 변경이 의료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탁상공론의 결과라는 목소리가 높다.

복지부가 개정 내용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대한병원협회에 개정에 따른 전체 수련병원 및 기관의 수련규칙을 취합해 공표할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된 내용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온다. 병원협회가 취합한 각 수련병원 및 기관의 수련규칙에는 각 기관에서 기록한 최대 수련시간 등은 포함돼 있지만 실제 전공의 근무시간 변화에 대한 실태조사는 내용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 “대체인력도 없이 쉬라는 말 = 탁상공론” 

전공의들은 하나같이 ‘대체인력 확보 후 정책 시행’에 목소리를 높인다. 서울소재 한 수련병원소속 전공의는 23일 기자와의 면담에서 “주당 80시간 이하 근무 어쩌고 말은 하는데 실제로 현장에서는 허위로 수련시간을 기록하기도 하고 실제로는 더 많은 시간을 일하기도 한다”며 “전공의 충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과일수록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소재 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도 이날 “복지부의 정책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의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공의는 “대체인력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공의들 쉬라고 하는 것은 환자를 포기하라는 뜻이거나 아니면 일은 하되 서류상으로는 쉬라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 “일은 하되 당직근무표 기록은 못해”

또 다른 전공의도 “당직근무표에 기록은 못하지만 일은 해야 한다. 수련현황표가 실제 근무시간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서류상으로는 쉬고 있지만 몸은 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복지부 정책 방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지난해 10월 한국병영경영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규정 개정 이후에도 인턴 82.3시간, 레지던트 1년차 83.2시간, 레지던트 2년차부터 76.9시간으로 인턴 및 레지던트 1년차가 주당 8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었다. 각 수련기관이 대체인력(PA) 고용을 고려하고 있는 대상은 전문의(44.9%), 간호사(24%), 전임의(16.7%)순이었다.

같은 해 11월 대한전공의협의회 설문조사 결과도 규정 개정이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설문에 응한 전공의들은 규정 개정 이후에도 ▲근무시간 동일(81.4%) ▲36시간 이상 근무(40%) ▲근무시간 증가(8.9%) ▲수련 현황표 허위작성 압력 경험(44.5%) ▲하루 2시간 이하 수면(15%) 등의 문제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12월 경기도전공의협의회가 아주대학교병원, 분당차병원, 분당제생병원,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등 경기도지역 5개 수련병원별 의국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6.3%가 ‘새로운 규정 시행 후에도 수련근무환경 개선이 전혀 없거나 오히려 악화됐다’고 답했다.

특히 경기도전공의협의회 설문 응답자의 73.1%가 ‘인력증가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고 향후 전공의 대체인력으로 거론되고 있는 ‘호스피탈리스트 제도’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는 응답자도 57.4%나 됐다. 

#. 전공의 인력난, PA 난립 화근 될 수도

가톨릭의과대학은 지난 1월 19일 의과대학 최초로 외과 전공의들의 ‘주당 80시간 근로’ 보장을 약속한 바 있다. 줄어든 근무시간 외에 향후 외과 전공의들에 대해 ▲근무 대체인력 확보 ▲4년차 전공의 전원 해외연수 ▲내시경초음파실 파견 근무 ▲인센티브 제공 등의 혜택을 제시했다.

이는 2006년 전공의 정원 100%를 달성했던 이 병원 외과가 2007년 88%, 2010년 35%, 2014년 21%, 2015년 57% 등 지난 9년간 정원을 채운 해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대학 측의 약속도 공염불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성모병원 외과에서 수련과정을 마쳤던 한 의사는 23일 “10년 가까이 외과 정원이 채워진 적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인력 수급이 안 된다는 것”이라며 “가뜩이나 인력이 부족한데 전공의 해외연수나 초음파실 파견 근무 같은 조건을 제시한다는 것은 무척 현실성이 떨어지는 약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대체인력을 확보하겠다고 하는 것인데 전문의나 전임의를 충원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PA를 대거 채용해서 부족한 인력을 메우겠다는 것인지 그 저의가 궁금하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복지부가 충분한 인력수급이나 추가적인 인력 충원을 위한 정책, 비용 등에 대한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새로운 규정을 내놓고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장 수련기관에서는 전공의를 대체할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영리를 추구하지 못하는’ 의료기관의 특성상 많은 돈을 들여 인력을 대거 충원하기는 어렵다”며 “복지부의 멀리 볼 줄 모르는 정책의 결과는 PA양산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는 곧 의료소비자인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같은 내용과 관련해 복지부 관계자는 “앞으로 수련시간이나 휴일, 휴식시간 등 수련기관에서 규정에서 정한 내용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수련시간 측정과 해당 수련기관 및 전공의 근무내용 등에 대한 평가는 누가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이 주축이 된 전공의수련환경협의체가 독립적인 수련환경 평가기구 방안을 마련해 오면 복지부가 이를 최대한 수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아직 협의체에서 어떤 내용도 전달받은 바 없다”고 전했다. 

# 일과 교육, 구분도 안 되는데? 수련병원 상대 임금지급 청구소송 빗발칠 것

지난해 12월 대전지방법원은 한 전공의가 제기한 초과수당 지급 청구소송에서 전공의의 손을 들어줬다. 건양대병원에서 10개월간 수련을 받았던 A전공의는 “건양대병원이 수련이라는 명목 하에 연장근무, 야간근무, 휴일근무 등 당직에 대해 별도의 근로계약서 작성 없이 포괄적으로 임금을 지급해왔다”며 “병원 측은 10개월간의 당직수당을 근로기준법에 따라 산정, 지급해야 한다”고 소를 제기했다. 1심과 2심 모두 승소한 A전공의는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 A전공의가 건양대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초과수당 지급청구소송은 현재 대법원 판결만 남은 상태다.

민법상 임금채권에 대한 소멸시효는 3년이다. A전공의가 대법원 판결에서도 승소한다면 전공의 수련을 마친지 3년이 넘지 않은, 다시 말해 임금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수많은 전공의들이 지금까지 초과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던 수련병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어느 의료기관도 이에 대한 고민이나 대비를 하고 있지 않다.

복지부와 수련병원들이 바뀐 규정과 수련규칙 시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전공의들은 ‘속았다’는 생각에 실의에 빠져있는 지금 이 상황의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전공의 수련과정에서 ‘교육’과 ‘근로’ 부분을 구분하는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이다.

병원협회에서 전공의들의 수련과정을 교육시간과 근로시간으로 구분하는 것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은 있지만 전공의와 의료기관 그리고 의료소비자 모두의 요구조건을 만족할만한 연구가 이뤄진 적은 없다.

# 법조계 “교육시간도 엄연히 근무시간, 상응하는 급여 지급해야”

S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령 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고용돼 있는 기관에서 이뤄지는 교육, 회식, 단합대회 등 소속 기관에서 이뤄지는 모든 행위는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한다”며 “전공의들이 받는 교육은 이들이 수행하는 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법리적으로는 교육을 받는 시간도 업무시간이라고 봐야 하고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전했다.

의료계 한 전문가도 “전공의들의 업무 내용 중 교육과 일을 구분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교육이나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전공의들에게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수련병원이나 기관이 나서서 이를 구분해 줘야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전문가는 “업무와 교육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면 전공의 수련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전공의가 소속된 의료기관이 부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며 “전공의들은 그들이 교육 받는 모든 비용을 의료기관이 부담하는 만큼 그들이 받는 교육에 대한 적정성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 의사협회 · 병원협회, 전공의 문제 대안 없이 뒷짐만 … 

의사협회와 병원협회는 대한민국 의료계의 두 축이다. 두 단체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협의해 해결방안을 찾고 앞으로 의료계를 이끌어갈 젊은 의사들에게 길을 제시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두 협회 모두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변명도 하지 않고 있다.

전공의들이 그들의 근로조건, 근무환경, 급여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건강이나 환경만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전공의들이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현재 의료현장에서 이들이 미래를 생각하거나 희망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사도 사람이다. 특히 전공의들은 한창 젊음을 즐겨야 할 청춘이다. 이들이 단지 의사의 길을 택했다는 이유만으로 휴일 없이, 쉬는 시간도 없이, 화장실 변기에 엎드려 쪽잠을 자 가면서 청춘을 희생해야 할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실시간 치과전문지 덴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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