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학병원 분원 설립 경쟁에 칼 빼든다
정부, 대학병원 분원 설립 경쟁에 칼 빼든다
  • 박원진 기자
  • 승인 2023.08.0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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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회, ‘대학병원 분원 설립 문제 대응 국회 토론회’ 개최
“무분별한 병상 과잉공급으로 대한민국 의료체계 붕괴 위기”

대학병원들이 수도권 지역에 경쟁적으로 분원 설립에 나서면서 지역의료가 고사 직전에 놓였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가뜩이나 서울 등 수도권 중심의 상급종합병원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분원까지 설립되면서 지방의 의원급의료기관이나 중소병원들은 환자가 없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분원 설립은 병상 과잉 공급 문제를 유발, 건강보험재정까지 위협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급기야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가 대학병원들의 분원설립 경쟁에 강력히 제동을 걸고 나섰다. 복지부는 분원설립으로 인한 병상 과잉공급 문제 해결에 칼을 빼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 의료체계 자체가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에서다. 

의사협회는 3일 대한병원협회 및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과 ‘병상자원의 적정한 관리방안 마련 및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 문제 대응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대학병원들의 잇따른 분원 설립 경쟁에 경고음을 보냈다.

3일 국회에서 열린 ‘병상자원의 적정한 관리방안 마련 및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 문제 대응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열린 토론을 벌이고 있다. [2023.08.03]

이종성 의원은 “현재 우리나라의 전체 병상 수는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OECD 대비 2.1배, 요양 병상 수는 8.8배나 많은 상황”이라며, “그런데도 현재 수도권 7개 대학병원이 수도권 내에서만 무려 9개의 분원 설립을 추진 중으로 계획대로면 병상 약 6000여 개가 증가하며, 필요 의사 인력만 약 30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무분별한 병상 수 증가는 필연적으로 입원진료비 증가로 이어져 건강보험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것”이라며, “한편으로 수도권 의료인력 쏠림 현상을 유발시켜 지방의료 인프라 구축에도 큰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9개 대학병원 11개 분원 설립 추진 ... 동네병원 폐업”

이필수 회장은 “우리나라는 환자와 의료자원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지역의 의원급 의료기관과 중소병원들은 상대적으로 환자가 없어 폐업하는 등 의료기관 종별 격차가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에 따라 지역의 일차의료 붕괴가 가속화되고 입원을 원하는 환자들은 적기에 입원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그런데도 현재 9개 대학병원이 11개의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어 2028년이 되면 수도권에 6600병상 이상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회장은 “수도권 대학병원의 경쟁적 분원 설립은 지역 내 환자는 물론 의료인력까지 무분별하게 흡수하여, 지역의 우수한 의료 인프라 구축에 큰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의료생태계 및 지역 의료시스템을 파괴하여 의료전달체계를 붕괴시키고 의료비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정부의 지역별 병상관리 계획에 반드시 필수·중증·응급의료병상 등 병상별 특성, 지역적 특성이 반영되어야 하고 더 이상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설립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다. 대학병원들의 경쟁적 분원 설립에 정부가 강력한 제동을 걸어야한다는 의미다.

윤동섭 대한병원협회장, 분원 설립 문제 해결에 온도차 보여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맡고 있는 윤동섭 대한병원협회장은 분원 설립 문제 해결 방안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화법으로 온도차를 보였다.

그는 “우리의 의료 현장은 의원부터 상급종합병원까지 무한경쟁을 해야만 하고, 규모의 경제로 인해 의료기관은 대형화 되고 대도시 중심의 쏠림현상은 지역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도 한다”며, “의료 인프라에 대한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합리적인 배분의 필요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합리적인 해법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의 미온적 태도는 자신이 재직 중인 연세대 측의 분원 설립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세의료원은 현재 2026년 말 완공을 목표로 인천 송도에 800병상 규모의 송도세브란스병원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와 관련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우리나라 병상자원의 적정 관리를 위한 조치들을 신속하고 단호하게 취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경쟁적 분원 설립과 관련해 ‘고강도 규제’에 나설 계획임을 시사했다. 

“지역민은 환영하겠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불행”

조 장관은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 대비 병상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보건의료의 지속가능성과 형평성 측면에서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며, “과잉 공급된 병상은 낮은 병상이용률과 긴 재원일수에서 드러나듯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국민의료비 상승의 주요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러 대형병원들이 수도권에 분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국가적 차원에서는 다수의 분원 설립이 지방 의료인력의 수도권 유출을 심화시키고, 지방의 필수의료 기반을 약화시키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정부는 곧 제3기 병상수급 기본시책을 시행하고, 지자체와 함께 병상자원의 관리와 지역의료체계의 개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며, “병상관리 체계 구축을 위한 법・제도 개선 및 정책적 노력도 신속히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의 토론회는 매우 시의적절하게 개최되어 병상과 의료자원 문제에 대한 모두의 관심과 행동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는 정부가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와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분원 설립에 고강도 규제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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