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70% 12시간 이상 연속 근무 ... “음주 상태에서 환자 보는 것과 동일”
전문의 62% “의대생 및 전공의 복귀 무산될 경우 사직할 것”
정부는 추석 연휴 동안 응급실에서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자화자찬식의 발표를 했지만, 대신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음주 상태나 다름없는’ 살인적 노동강도에 시달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응급의학과 전문의 절반 이상은 사직할 의향이 있다고 밝혀, 현재의 의료대란이 더욱 심각해 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국민들에게 응급실 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2024년 9월 19일~20일까지 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근무 현황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조사에는 34개병원 89명의 수련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응답했다.
전의교협은 “응급실에서의 근무 및 당직 일정은 해당 병원의 전문의가 서로 공유하기 때문에 응답자 수와 상관없이 본 조사결과는 34개 수련병원의 응급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의교협은 우선 9월 13일부터 20일까지 1주일간 근무시간에 대해 질문했다. 그 결과, 전체 89명 중 28명(31.5%)이 48시간 이상 근무한 것으로 응답했다. 9명(10.1%)은 64시간 이상 근무했으며, 3명(3.3%)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104시간 이상 근무했다고 응답했다.
최대연속근무시간에 대한 질문에는 62명(69.7%)이 12시간 이상 연속근무를 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15명(16.9%)은 16시간 이상, 이중 3명(3.3%)은 36시간 이상 근무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전의교협은 “깨어난 후 16시간이 지나면 업무 수행능력이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에 환자 안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며, “특히,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후 20시간이 지난 후의 근무는 음주상태에서 환자를 보는 것과 동일하다”고 전했다.
아래는 수면 후 깨어 있는 시간과 업무 수행능력을 비교한 그래프이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8의 음주운전(영국기준) 상태와 비교한 것인데, 잠에서 깨어난 후 25-27시간이 지나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의 업무수행능력을 가진다. 깨어난 후 16시간부터 급격히 수행능력이 감소하여 20시간이 넘어가면 음주운전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새벽까지 연속근무는 음주근무가 된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에게 사직에 대한 의향을 물어본 질문에는 46명(51.7%)이 실제 사직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전공의 복귀가 무산될 경우 무려 55명(61.8%)이 사직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어서 현사태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의교협은 “우리는 정부가 호언장담하듯 현재의 의료대란이 앞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하루가 멀다고 발표하는 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며, 앞으로 더 큰 부담으로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 명확하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응급실 대란은 의료대란의 종착역이 아니라 의료대란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앞으로 응급의료의 위기는 심각해질 것이며, 연이어 중환자실 등의 진료에도 문제가 발생할 것이 자명하다”고 단언했다.
전의교협은 “그럼에부 불구하고 수련병원의 많은 전문의와 교수들이 응급의학과를 비롯한 필수의료의 유지를 위해, 그리고 환자의 피해를 막기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은 전공의와 학생들이 다시 병원으로 학교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의교협은 그러나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은 더이상 유지될 수 없으며, 이러한 사실을 현장의 의료진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불통과 무능력, 무책임한 정부의 의료정책은 전공의와 학생뿐만 아니라 전문의들마저 병원과 학교를 떠나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실체도 불명확한 10년 뒤의 허상을 쫓을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그리고 눈앞에 다가와 있는 의료붕괴의 현실을 인정하고, 해결을 위한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