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시절]노인복지센터에서 치과진료 봉사 (61)
[그때 그시절]노인복지센터에서 치과진료 봉사 (61)
  • 김희경
  • 승인 2010.03.02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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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들른 노인복지센터에서 진료봉사 기회생겨

▲ 2001년 경우회 동해안 여행길. 가운데 필자
[덴탈투데이/치학신문] 서울치대 동창회로 가입후는 서울동창회 회보로 회지명을 갱신하였다. 내 편지를 받아본 데지마회장은 자기가 미처 생각지 못한것을 내가 알려주어서 감사하다는 편지와 모교소식은 내가 직접 송부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치의신보와 치학신문의 모교, 동창회, 경우회, 학수회 소식을 일어로 번역하여 원고를 송부하였다. 내 원고는 대부분 일본동창회보에 전해 졌다. 주제는 모교교수진의 동태였다. 모교건물 건축(치과병원) 특보도 보냈다.

매번 내 번역기사는 빠짐없이 동창회보에 개제되었다. 1993년부터 시작한 원고 송부도 2005년 12월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간 12년간에 걸처 정열을 쏟아 번역한 기사였는데 데지마 회장께서 고령으로 더 이상 회보편집에 손을 데지 못한다는 비보를 전해들었다.

참으로 정열이 넘치는 선배님이었다. 내가 동창회 명부를 수정한다는 소식에 일본 동창회 명부를 그간 10권이나 보내주신 분이다. 그 명부가 내 수정작업의 기초가 된 것이다.

2001년도 경우회는 한국측 담당이었다. 이번에는 동해안 설악산 강원도로 정하였다. 일행은 서울에서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출발했다. 서울-강릉간 고속도로가 잘 정리되었고 나무들도 일본배교해 손색이 없었다.

주위 풍경도 산과강이 조화가 잘 되어있는 지리적인 조건이었다. 케이블카로 설악산 정상에도 올라갔다. 아쉬운 것은 설악산 일대의 화재때문에 아직도 화재 잔근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관광하는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유명한 춘천막국수를 점심메뉴로 택했더니 일본친구들이 맛있다면서 한 그릇을 뚝딱하였다. 저녁식사도 푸짐하여 대만족이었다. 동해 해물탕 맛도 일품이었다. 회원간에 예정일정을 다시 2박3일로 환원하자는 의견이 제의됐다. 고령에 힘이드는듯 생각 됐다.

2001년도에도 나는 ‘캐나다’를 방문해 수도인 오타와, 몬트리올 여행을 했다. 한국여행사도 그간 많은 발전을 했다. ‘록키산맥’ 관광때만 하더라도 소형버스였는데 이번 관광버스는 대형 리무진버스였고 운전기사는 현지 캐다다인이었다.

리무진버스는 좌석이 아주 편했다. 피로감도 별로 없었다. 이곳에서는 불어를 사용하는 시민이 많은듯 하여 그 당시에도 ‘퀘백’주 독립을 주장하는 자가 많은 것으로 보도됐다. 몬트리올경기장에서 우리나라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양정모’선수 이름을 조각한 표시가 되어있는것을 보고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장한 거사였다. 나는 아직도 일본 서적에 대하여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여 안국동 일본대사관 분실 문화관에서 회원자격으로 일본 서적을 빌려 2주간씩 읽고 있다. 캐나다에서 귀국하여 일본 서적을 빌리려고 문화관으로 가는길에 안국지하철길에서 많은 노인들을 발견하였다.

내가 갈길은 좌측인데 노인 대부분은 우측으로간다. 한노인에게 그곳으로 가면 무엇이 있고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었더니 노인복지회관으로 간다는 것이다. 나는 순간 일어통역이나 또는 번역하는 것이 생각이 나서 노인들이 가는 방향으로 동행했다.

지하철 출입구에서 약 50m거리에 ‘서울노인복지센터’라는 간판이 있다. 무조건 현관으로 들어가니 접수처가 보인다. 여직원이 접수를 하고있다. 나는 여직원에게 일어 통역 또는 번역을 원한다고 하였더니 그런건 담당하는 부처가 따로 있다고 한다.

대화중 한 여직원이 ‘치과진료소 청소를 하고 오는길’인데 하는 말에 치과진료소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현재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실은 나는 치과의사가 본업이라고 말하고 진료실을 견학할 수 있는지 물었다. 여직원의 안내로 2층치과 진료실을 찾아갔다.

진료실은 2대의 유닛체어와 의자 X-선실 기공실까지 있다. 소규모지만 아담한 진료실이었다.

진료실 벽에 ‘열린치과의사회’라는 글이 있었다. 이곳진료실 운영을 하는곳이 ‘열린치과의사회’라는 것을 알게되어 진료실 책임자 전화번호와 성명을 적어 집으로 돌아와 책임자에게 전화를 했다. 봉사활동을 하고자 한다고했다. 책임자는 ‘박우찬’ 선생이었다.

그와 화요일에 복지센터 진료실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약속일 약속장소에서 만나 봉사하는데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노인복지센터’는 2001년 4월에 창립되었고 열린치과의사 열린치과의사회가 치과진료실을 설치 한것은 6월 내가 봉사를 시작한것은 11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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