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방비 상태 의료인 폭행·살인, 이대로 괜찮은가?
무방비 상태 의료인 폭행·살인, 이대로 괜찮은가?
  • 윤수영 기자
  • 승인 2011.10.0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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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도 오산에서 치과치료를 받은 환자가 진료에 불만을 품고 보상금을 요구하다 이에 실패하자, 치과의사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의료인에 대한 강력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치과의사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지난 2001년 서울 목동 치과의사 살해사건에 이어 이 같은 치과의사 강도살인 사건이 또다시 벌어진 데 대해 치과의사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의료사고로 인한 보복성’ 단순폭행 혹은 우발적 살인이 아닌 치밀한 계획 하에 벌어진 ‘강도살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치과계가 더욱 큰 충격에 빠진 상태다.

사안이 심각한데도 2009년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발의한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법’ 등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잊혀질 만하면 터지는 치과의사 대상 강력범죄. 이를 계속해서 단순 의료사고로 인한 폭행으로 볼 것인지 국회, 보건복지부 등 관계당국의 책임 있는 태도가 요구되고 있다.

◆ 강력 사건 발생시각은 진료가 끝난 후, 계획된 범죄?

▲ 사건 발생 직후 언론 보도들.
사건발생 직후 일부 매체는 ‘시술 부작용이 부른 참극’, ‘치과치료 만족 못해 살해’ 등 자극적인 보도와 함께 이 사건을 의료사고로 인한 우발적 살해로 몰아갔다. 

하지만 치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의 우발적 범죄가 아닌 보상금을 노린 계획적인 ‘강도살인’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치과계 및 의료계 전체의 반응이다. 사건 발생 시각이 진료가 끝난 늦은 오후인데다, 용의자가 칼과 야구방망이를 들고 치과를 방문했다는 것이 계획된 범죄임을 뒷받침한다.

지난 2001년 양천구 치과의사 살해 사건 당시 치과의원에 침입한 괴한 4명은 치과진료시간이 끝난 오후 7시경 서울 양천구 목동 C치과에 마스크를 쓰고 침입해 반항하는 원장을 둔기로 때려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들은 당시 함께 있던 간호사와 환자 등 4명을 전깃줄과 테이프로 묶은 뒤 800여만원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도 받았다.

교도소 동기인 이 괴한들은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으며, 사건발생 직후 경기 시흥시 정왕동 한 여관에 은신 중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발생한 살해사건도 오후 6시 30분경 치과의원의 진료가 모두 끝난 후 발생했다.

▲ MBC 보도 영상
경기도 오산시 궐동에 위치한 한 치과의원에서 스케일링 치료를 받은 이 환자는 이가 시리다며 치료불만을 제기했고, 그동안 치과를 한두 차례 방문하면서 500여만원을 요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용의자는 이 병원 유 모 원장이 이에 응하지 않자 앙심을 품고 준비해 간 칼과 야구방망이로 온몸을 10여차례 가격,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을 접한 한 치과의사는 “의료인을 상대로 한 폭행, 살인이 잊을 만하면 발생하고 있다”며 “섬뜩한 느낌에 진료하기가 겁난다”고 고백했다.

그는 “진료가 끝난 후 준비해 온 흉기를 가지고 병원에 갔다고 하는데, 계획된 범죄 아니냐”며 “단순히 진료에 불만을 품고 벌인 사건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그저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일선 치과의사들은 일부 언론에서 ‘진료 부작용’을 부각시키며, 이것이 마치 타당한 범행동기라도 되는 양 전하는 보도 태도에 또 한번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또 다른 치과의사는 “진료가 문제가 있었다는 식의 접근은 진료를 못하면 칼을 맞아도 된다는 논리”라며 “진료실의 의료인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다는 점에서 개탄스럽다”고 분개했다.

◆ 진료실 폭력방지 의료법 개정안 표류 중

사실 이 같은 문제는 치과의원뿐 아니라 일반 병원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과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2008년과 2009년 각각 ‘의료인 폭행 가중처벌법’을 발의했지만, 법안은 아직까지 국회에 계류중이다.

시민단체들이 폭행이 발생하는 원인을 의사의 오진이나 의료사고로 보고, 의료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폭행 발생 원인인 의료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은 형법, 응급의료에관한법률,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에서 이미 처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의료법에 가중처벌 규정을 두는 것은 과잉입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 “의료인 폭행·살인 등 강력범죄는 곧 지역사회 손실”

하지만 환자를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의료계 안팎의 반응이다. 

의료기관에서 의료인을 폭행, 폭언, 협박 등 비슷한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은 환자와 의료인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법적·제도적 장치와 국가의 행정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회장 김세영, 이하 치협) 산하 고충처리위원회 관계자는 “치협은 고충처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지만, 환자의 폭언·폭행으로 인한 고충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 의료인들의 진료 외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지역사회의 구강건강을 담당하고 있는 한 치과의사가 칼에 찔려 숨졌다는 얘기는 그 의사가 진료를 담당했던 주민의 구강건강 역시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것”이라며 “사회적으로도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치협은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로까지 전개된 진료실 폭력의 문제는 다시 한 번 심도있게 다뤄져야 한다. 의료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동들은 의료인의 진료권을 침해하고, 다른 환자를 위한 진료에도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이라며 “의료기관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폭행, 협박 등을 예방하고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을 위한 법적·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국회와 법무부, 보건복지부에 적극 건의하겠다”고 전했다.

-실시간 치과전문지 덴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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