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기지개 펴는 군산을 느끼다
조금씩 기지개 펴는 군산을 느끼다
  • 김지희
  • 승인 2012.04.09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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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여자치과의사회 역사문화탐방기

전국에 강풍을 예고하는 뉴스를 보면서 따뜻한 봄날 유유히 걸으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그런 설렘도 같이 날아가버리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봄바람을 뚫고(?) 찾아간 근대문화유적의 도시 군산에는 이곳저곳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1900년 전반시대상과 함께 우리의 아픈 역사를 새삼 떠올리게 했습니다.

가난한 조선인들을 착취하여 기름진 호남과 충청지방에서 엄청난 양의 쌀들이 이곳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됐다고 합니다.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일제시대의 그늘을 보게 된다는 건 역시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 이영춘 가옥
대지주로 2만여명의 조선인 소작농을 거느렸던 일본인의 별장, 당시 일본 총독부 관저와 맞먹는 비용을 들여 지어놓은 그 집은 품고 있는 역사는 씁쓸하지만 건물 자체는 지금 보아도 참 운치 있습니다. 지주였던 구마모토가 체계적으로 조선인들을 다루기 위해 조선인 의사 이영춘 선생에게 농민들을 진료 하게끔 하였고 일본 패망이후엔 이영춘 선생님이 사시다가 국가에 헌납,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고 있습니다.

또 한 채의 일본 가옥으로는 히로쓰라는 지주이자 포목상의 집으로 2층의 전형적인 일본 에도시대의 건축양식을 따르면서 다다미방과 정원을 중시한 일본인의 성향을 보여줍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의 배경이라고 하네요.

누군가가 살던 집을 들여다보는 것은 조금 식상한 일이기도 하지만 당시 시대상을 배경으로 내가 주인인 듯 상상하며 둘러보면 잠시나마 그 집에 온기를 더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늘 좁은 복도를 종종 거리며 기모노를 입고 움직이는 여성들이 이곳에서도 어른거립니다. 우리 어릴적 보았던, 때로는 살아보기도 했다는 적산가옥의 모습. 5, 60대 이상의 선생님들께 향수를 자극하는 또 다른 형태의 유적지입니다.

곰팡이 냄새, 삐걱거리는 마루, 쇠퇴한 집안의 기둥이 영원한 것은 없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합니다.

군산을 방문한 어떤 젊은 블로거의 사진에서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일본가옥과 비교해서 군산에 남아있는 일본식 가옥을 함께 찍어놓은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 흡사하여 깜짝 놀랐는데 일본에도 이런 가옥들이 많지않아 일본인들이 관광을 온다고 하니 보존이 잘 되었다는 얘기겠지요.

▲ 동국사
시내에서 찾아간 절 동국사 역시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입니다. 군산은 일본이란 꼬리표를 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도시였습니다. 한눈에 지극히 일본스러운 절임이 드러나는 외향과 대웅전 뒷편의 쭉쭉 뻗은 대나무숲. 대웅전안에 삼성각, 지장전, 칠성각에 모시는 불상들이 함께 자리하고 복도로 연결된 요사체까지 공간이 허락치않아 이와 같은 형태를 취했으리라 생각되지만 한국의 사찰과는 참으로 다른 모습이였습니다.

주택들 사이에 자리잡은 작은 안마당을 지닌 정말 작은 절 동국사 하지만 방문객들의 발길은 제법 오래 잡아 끌었답니다.

코너를 이루는 커다란 유리창 덕에 군산항 앞 바다의 밀물과 썰물을 볼 수 있는 횟집에서 식사가 좋은지 풍경이 한 수 위인지 수다가 더 맛있는 것인지. 즐거운 점심시간이 흘러갑니다.

군산의 우리나라 1호 제과점 이성당은 일본인이 운영하다 넘겨준 곳이니 그 역사가 70여년 됐을까요? 그냥 일반 빵집이나 빵을 제대로 볼 수가 없고 텅빈 쟁반들만 수두룩합니다. 나오면 바로 팔리기 때문이지요. 빵보다 입구밖까지 늘어선 사람들 구경하는게 더 흥미롭습니다. 전국에서 온 외지인까지 놀라울 뿐입니다. 미리 예약한 덕분에 단팥빵 맛을 볼 수 있었지만 정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싶더군요. 참, 빵 맛은 배불러도 맛있는 거 보면 괜찮다는 얘기겠지요. 다음엔 한번 택배로 주문해볼까 합니다.

오후의 채만식 문학관은 지자체들의 바지런함으로 그 고장의 위인스러운 인물을 만나게 됨은 덤으로 얻는 지식이 되기도 합니다. 신파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90년대 전반..문학작품들, 유명한 채만식의 탁류. 교과서에서 외웠던 그 이름. 그러고 보면 제목만 기억하고 실제 읽지 않은 고전이 왜 이리 많은지 기회가 되면 한번 정독을 하리라 잠시 결심을 해봅니다.

▲ 나바위성당
오후가 기울어지니 바람이 다시 차가워졌습니다. 익산 나바위 성당은 김대건 신부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와 조선에 첫발을 디딘 곳이라고 합니다. 아산 공세리 성당과 흡사한 느낌을 주지만 벽돌과 목재가 혼재하는 건축물과 조선스러운 좁은 회랑 스테인드 글라스 대신 한지로 표현한 창문, 작은 동산을 이루는 십자가의 길, 그 동산 정상의 금강을 굽어보는 정자 망금정까지 나름의 매력이 충분한 곳입니다.

초봄치곤 매서운 바람에 잔뜩 움추러들긴 했지만 번잡스럽지 않은 성당내 분위기 덕분에 여정의 마무리는 깔끔하게 이루어진 듯싶습니다.

3월의 이곳저곳은 어딜가도 황량합니다. 찾아간 곳의 역사 역시 화려한 곳이 아닙니다. 국보와 보물이 멋지게 자리잡은 곳을 보러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나 때로 힘들었던 시절을 되새겨보는 일 역시 필요하리라 여겨집니다. 누구의 삶이든 희노애락이 있듯이 역사에서도 분명 굴곡이 있습니다. 그것을 느껴보는 것이 진정한 역사문화탐방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겨울의 끝을 벗어나려고 움트는 꽃망울처럼 조금씩 조금씩 기지개 펴는 것 같은 군산의 모습 그곳에서 한국의 발전에 일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집니다. <김지희 프라임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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