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내국인 진료제한은 위법’ 판결 일파만파
‘영리병원 내국인 진료제한은 위법’ 판결 일파만파
  • 박원진 기자
  • 승인 2022.04.0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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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 5일 “녹지병원 조건부 개설 허가 부당”
의료계 “의료체계 무너진다” 심각한 우려 표명
국내 첫 영리병원 도입 철회를 촉구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가 9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문재인 정부 제주 영리병원 불허 응답 촉구 노동시민단체 대표자 기자회견’에서 피켓 시위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내 첫 영리병원 도입 철회를 촉구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가 2018년 1월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문재인 정부 제주 영리병원 불허 응답 촉구 노동시민단체 대표자 기자회견’에서 피켓 시위와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제주도의 영리병원 조건부 개설 허가는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큰 파장을 낳고 있다. 해당 판결을 내린 판사 등 재판부의 현실인식 부족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제주지방법원 행정1부(재판장 김정숙)는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가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을 취소해달라’며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5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달아 개원을 허가한 것은 법령상 근거가 없어 위법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일명 제주특별법)은 ‘외국의료기관에 대해 제주특별법에서 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의료법을 준용한다’고 규정됐다”며 “이에 따라 외국의료기관이 제주특별법과 의료법이 정하는 요건에 맞을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허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제주특별법과 제주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를 언급하며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에 이 사건 허가 조건과 같이 진료 대상을 제한하는 내용의 부가적인 약관을 붙일 수 있다는 명시적인 근거가 없다”며 “제주도가 아무런 법령상 근거 없이 붙인 이러한 약관은 위법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제주특별법 제정 이전에 시행됐던 구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서 외국인의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개설에 관한 특례를 규정했다가 현재 삭제돼 외국인이 개설하는 의료기관에 내국인을 대상으로 의료업을 행하는 것이 허용된 점, 제주특별법에 외국인 전용 약국 개설에 관한 특례를 규정해 외국인이 개설하는 약국은 여전히 내국인 이용이 제한된 점도 원고 승소 판결의 이유로 들었다.

제주도는 지난 2018년 12월 녹지병원에 내국인을 제외한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병원을 운영하도록 하는 조건부 허가를 내린바 있다. 하지만 녹지병원 측은 이러한 제주도의 조건부 개설 허가 처분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취소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관련 제주지법이 영리병원의 손을 주면서 앞으로 우리사회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비록, 1심이지만 향후 재판에서도 그대로 확정될 경우 앞으로는 영리병원에서 내국인 진료를 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실제로 녹지제주측은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풀리면 영리병원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녹지제주는 병원을 개원하지 못해서 생긴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 및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도 제기할 방침이어서 파장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법원 판결은 의료계는 물론 시민사회의 큰 반발을 불러올 전망이다. 당장 대한의사회가 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의협은 이날 “영리병원 도입을 부추기는 법원 판결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는 자체 입장문을 통해 영리병원 허용시 불거질 사회적 파장과 문제점을 조목조목 나열하며, 제주지방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판결과 관련, “의료기관이 운영되는 궁극적 목적은 단 한 가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함”이라며, “우리나라 의료법 33조에서도 의료기관 설립이 가능한 기관은 비영리 법인으로 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을 지켜야할 판사가 오히려 의료법 취지를 왜곡해 판결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의협은 의료기관이 영리행위로 개방될 경우 환자들에게 많은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이번 판결은 기존의 의료법을 뒤집고 영리병원을 합법화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영리 병원은 의료기관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보다는, 말 그대로 오로지 영리추구만을 위해 운영될 것이라는 얘기다. 

“영리병원, 이윤창출의 도구로 전락할 것 ... 국내 의료시스템 붕괴 및 환자 생명 위협”

의협 관계자는 “영리병원의 도입은 대형 자본 투자로 이어지고 결국 의료는 이윤창출의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영리병원의 도입은 한 병원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의 의료제도와 의료시스템 전반에 있어 이윤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여 치명적 위해를 끼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영리병원은 소위 돈 안 되는 필수의료과목을 진료과목에서 퇴출시키고 필수진료를 담당하는 의료기관들은 거대 자본을 앞세운 영리병원들의 횡포에 밀려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의협의 설명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방 중소 의료기관들의 연이은 폐업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붕괴시키고,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의협은 판단한다.

의협은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숙고해볼 수 있었다”며 “현재의 감염병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언제든 또 다시 찾아올 의료위기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기초로 이루어진 의료시스템을 갖춰야 하고, 민간과 공공의 적절한 역할 분담과 협조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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