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수술실 CCTV 설치로 위험한 수술 기피할 것”
의협 “수술실 CCTV 설치로 위험한 수술 기피할 것”
  • 이지혜 기자
  • 승인 2023.09.26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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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설문조사 결과 발표
해킹 등 환자 개인정보 유출 우려 ... 유지보수 비용 지원 촉구
6개월의 계도기간 보장 등 의료계 현실 반영한 제도 개선 요구

전신마취 등으로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에 수술실 CCTV 설치가 25일부터 의무화됐으나, 의사단체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회원 설문조사 결과 발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외과의사 기피현상 및 수술실 폐쇄 의향 증가에 따른 필수의료 붕괴 현실화를 지적하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수술실 CCTV 의무화는 수술실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법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2021년 9월 개정된 의료법에 따른 조치다. 개정 의료법이 공포된 후 2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5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의료계는 의료법 개정안 발의 단계부터 줄곧 반대 입장을 내놨다. 의협과 대한병원협회는 지난 5일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개정 의료법 조항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및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의협은 해당 법안에 대해 협회 차원에서 의료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추가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달 9일부터 18일까지 10일간 긴급 설문조사를 시행했고, 1267명이 응답했다. 

(왼쪽부터) 대한의사협회 임지연 의료정책연구원, 이필수 회장, 이정근 상근부회장, 이성필 의무이사 겸 보험이사 [사진=이지혜] (2023.09.25)
(왼쪽부터) 대한의사협회 임지연 의료정책연구원, 이필수 회장, 이정근 상근부회장, 이성필 의무이사 겸 보험이사 [사진=이지혜] (2023.09.25)

수술실 폐쇄 의향 증가 ... 해킹 위험도 우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3.2%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규정한 의료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의료인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격권,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다. 90% 이상은 의료인 직업 수행 자유와 인격권 등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이로 인해 외과 의사 기피 현상에 따른 필수의료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협 이필수 회장은 “의료기관 개설자로서 수술실을 폐쇄할 의향이 있다는 의견도 증가해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 감소가 우려되고 있다”며 “외과의사 기피현상으로 인한 필수의료 붕괴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성필 의무이사는 “환자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다는 상황 때문에 긴장하며 수술을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찍고 있다는 생각이 상당한 부담으로 느껴짐에 따라 의료진의 수술 기피 우려도 나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정근 상근부회장은 “주변 외과 전문의 동료들에게 들어보면 전신마취는 상급의료기관으로 보내고 국소마취만 하겠다는 의견이 나온다”며 “조금이라도 위험한 수술과 위험할 것 같이 예상되는 수술은 기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협은 CCTV에 촬영된 영상이 범죄에 악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제기하며 유지보수 비용 지원 등 의료계 현실을 반영해달라고 촉구했다. 수술 장면의 촬영 등을 둘러싼 의료기관과 환자 간의 분쟁은 모두 의료기관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는 게 의협의 설명이다. 

이필수 회장은 “비뇨기과와 외과 등의 경우 수술 부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에 따른 해킹의 문제도 우려된다. 관리 감독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수술실 CCTV 설치 비용 못지 않게 향후 상당한 유지보수 비용이 수반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유지비용에 대해서도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예산 반영 및 집행을 신속히 추진해 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만 하더라도 서울시 의료기관에 대해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근거 조항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후 과정에서 예산이 삭감되어 의원과 병원급밖에 지원이 안되는 상황이 됐다”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25일 의사협회 회관에서 ‘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회원 설문조사 결과 발표’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25일 의사협회 회관에서 ‘수술실 CCTV 의무화 관련 회원 설문조사 결과 발표’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CCTV 설치, 운영 기준 모호해 ... 6개월 계도기간 촉구

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설치·운영 기준과 안전관리조치 관련 규정이 모호해 일선 현장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설문 응답자 중 75.5%는 법 시행을 앞두고 수술실 CCTV 설치·운영 기준이 모호해 의료법을 위반하게 되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응답했다. 안전관리 조치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한 비율도 62%를 차지했다. 

임지연 의료정책연구원 연구원은 “법안 시행을 앞두고 여러 민원을 받았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및 운영 관련 가이드라인이 나왔는데, 지자체와 보건소 직원들이 이해하는게 다른 상황”이라며 “회복실에도 설치해야 한다는 것과 아니라는 해석, 외과 과목이 없으면 안해도 된다는 해석이 나와 현장에 혼란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필수 회장도 “수술실 CCTV 설치 운영 기준과 안전관리 조치 막연함에 대해 정부의 신속한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일선 지자체, 시군구, 보건소마다 규정이 달라서 혼란한 상황”이라며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계도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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